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는 19일 “'크롤링' 피해로 인한 손해배상액이 지금보다는 더 많이 나와야 한다”며 “조금 더 정교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롤링은 상대방의 애플리케이션(앱), 온라인 사이트 등에 올라온 게시글 정보를 통째로 긁어가 자신의 서버에 저장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 사이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민후는 국내 숙박 플랫폼 야놀자를 대리해 여기어때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 승소를 이끌었다. 법원은 여기어때가 크롤링을 통해 야놀자에 입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 변호사는 “크롤링은 리그베다위키 사건, 잡코리아 사건 등에서 위법하다고 명확히 정리가 됐었고 이번 사건에서 (위법성이) 다시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준성 민후 변호사는 “보통 웹상에 뿌려져 있는 정보를 긁어오는 것이 통상의 크롤링이라면 이 사건은 외부에 공개돼 있지도 않고 야놀자 내부에서만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여기어때 측이 분석한 다음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된 API 주소 등을 파악해 직접 명령을 넣어서 받아간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재판부도 불법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이번 사건에서 인정된 손해배상액은 10억 원으로 불법행위 기준으로는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김 변호사는 “기존 판결보다 많은 손해배상액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고 앞으로 액수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교두보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소심에서는 위법성보다는 손해배상액을 확장해야 한다는 쪽으로 다퉈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크롤링을 하는 이유는 분명히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1심에서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재판부에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손해 액수를 1억~2억 원 정도로 하면 큰 기업들은 이를 감수하고 크롤링을 한 뒤 걸리면 배상하고 더 큰 이익을 얻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손해액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 실익이 없다고 보고 이를 늘리는 과정에서 여러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방 회사에 공개된 재무 관련 정보를 다 입수해 분석화하고 수치화한 다음 피해 회사 시점으로 비교해 영업에 투입된 비용, 지사별로 인건비 등을 모두 계산해 법원에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귀띔했다.
크롤링으로 인한 피해 사례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런 방식의 데이터 탈취 시도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조용히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증거 수집을 하고, 어느 IP에서 어떤 식으로 들어와 어떤 자료를 빼 나갔고, 자사 서버에 어떤 영향을 줬다는 부분을 전문가 도움을 받아 채증해두면 법적 구제를 받기 쉬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원 변호사는 “크롤링이 위법 범위에 들어간 이유는 누적된 데이터를 통째로 가져가기 때문이므로 데이터베이스 자체 보안을 미리 강화해 놓는 것이 좋다”며 “간단한 보안솔루션 등 기본적인 것만 하더라도 사태 예방은 물론 나중에 피해가 생겼을 때 증거수집도 쉽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건은 국내 숙박 플랫폼 선두 다툼을 하던 두 업체가 형사·민사를 넘나드는 전면전을 펼쳐 이목을 끌었다. 여기어때 측은 형사사건 2심 무죄를 끌어낸 김앤장을 선임해 민사소송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본격적인 항소심 절차는 다음 달 시작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