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우울증을 포함한 기분장애 환자가 2016년 78만 명에서 연평균 6.9%씩 증가하여 2020년에는 102만 명에 이르렀다고 발표하였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사업장 폐쇄, 대인관계 단절 등 사회적 행위 금지로 ‘코로나 블루’라는 말까지 생겨났기 때문이다. BBC 뉴스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팬데믹 상황에 일주일 평균 80시간의 근로시간과 24시간 대기, 세계화로 작업공간과 국적의 의미가 없어짐에 따라 전 세계 노동자와의 경쟁을 위해 과로와 초과근로가 미화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일중독은 칭찬할 야망이자 기업에 대한 헌신으로 포장된다고 비판하였다. 문제는 최근 근무 방식으로는 노동자가 일에 문제가 있을 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른바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에게 불안과 우울감 같은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 차관급에 해당하는 외로움 부처를 탄생시켰다. 전인권의 말처럼 국민의 외로움을 국가가 관리해야 할 질병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영국 외로움부처 홈페이지에 올라온 ‘고용주와 외로움(Employer and loneliness)’이라는 자료를 보면 회사에서 외로움으로 고생하는 사람 1인당 복지, 생산성,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비용이 연간 9900파운드(약 1600만 원)로 추정한다. 노동자의 정신건강은 사회적 연결고리의 취약함, 외로움으로 인한 장기결석, 생산성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용주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이 자료의 핵심이다.
직장, 사회, 가정에서 고립감을 동반한 외로움은 자신과 맺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자신이 모든 것을 바친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또한 ‘죽고는 싶지만 떡볶이도 먹고 싶은’ 것 처럼 극단적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이 공존한다. 이러한 감정 상태가 바로 직장내 유대관계 해체 및 생산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노르웨이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Lars Svendsen)은 외로움은 개인의 과도한 기대가 낳은 결과물임에 따라 타인과 사회서비스에 대해 개인의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직장 내 우울증과 외로움을 개인의 과도한 기대와 심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 보인다. 아이폰 공장으로 유명한 중국 폭스콘(Foxconn)에서 2010년 1월부터 5개월 동안 11명이 투신 자살한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우리나라도 올해 5월 네이버 직원의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코로나 치료에 매진한 간호사 자살, 청년고독사, 자영업자 죽음 등은 개인의 과도한 기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노동자와 국민의 정신건강이 직장과 국가에서 중요한 이유는 과거와 달리 근로조건과 고용형태 변화 그리고 일과 삶의 질 개념 변화이다. 전통적인 임금, 고용안정성 같은 근로조건에 대한 기대보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건강한 삶의 유지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노동자의 정신적 장애를 미연에 방지할 사내 안전장치를, 국가는 국민의 외로움 관리 차원에서 느슨한 유대관계, 소속감, 친밀감을 가질 수 있는 노동환경 구축과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노동자 신체에 해를 끼치는 중대재해 관리도 안되는 상황에서 노동자 정신건강까지 국가가 돌보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