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내 자동차의 최소 30% 전기차로 전환
아람코도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 목표 제시
국제사회 움직임에 보폭 맞추고 자국 석유산업 안정화 의도
2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이날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 녹색 계획(SGI)’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국제 원유시장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2060년까지 사우디 내 탄소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보다 더 온실효과가 강한 메탄가스 배출량을 30% 줄이고,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연간 2억7800만t 감축하는 것을 포함해 다양한 새로운 기후 목표에 총 1870억 달러(약 219조 원)를 투자할 방침이다.
수도 리야드를 지속 가능한 도시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리야드에 나무 4억5000만 그루를 심는 것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리야드 자동차의 최소 30%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사우디 국부펀드는 이미 최근 몇 년 간 테슬라 경쟁사로 꼽히는 루시드모터스를 포함해 전기차 관련 사업에 투자한 상태다. 사우디 정부는 이 같은 계획을 통해 향후 리야드의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구상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사우디는 주요 20개국(G20) 중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은 국가다. 이와 별개로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는 2050년까지 자체 보유 사업에서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 계획을 밝혔다. 이는 사우디 정부가 제시한 탄소중립 목표연도보다 10년이나 빠른 것이다. 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반드시 달성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사우디의 탄소 배출 제로화 선언은 이달 말 영국 글래스고에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나왔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에 대한 전 세계의 위기의식이 고조된 가운데 국제사회 움직임에 보폭을 맞추는 동시에 자국의 석유산업을 안정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 정부가 석유 생산 확대를 위한 유전 투자를 줄일 계획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2060년 탄소 제로 목표 달성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개념인 ‘탄소순환경제’도 결국 계속해서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탄소순환경제는 배출된 탄소를 포집해 이를 재활용하거나 제거하는 기술을 통해 ‘지속 가능한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와 관련해 FT는 “이번에 제시된 탄소 배출 목표를 측정하는 요소에 원유 수출분의 탄소 배출량은 제외되기 때문에 사우디의 입지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이중적 정책적 행보가 기후변화 대응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기후변화 대응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고유가에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지자 최근 몇 달간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증산을 압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나세르 아람코 CEO는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동시에 석유와 가스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탄화수소(Hydrocarbon) 산업을 악마화하는 것은 안정적인 에너지공급 측면에서 역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