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들이 특정금융정보이용법(특금법) 신고 이후 ‘트래블룰’을 새로운 과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의무를 따라야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개정안이 사실상 기술의 한계를 고백하고 있는데 금융당국에서는 이를 준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트래블룰을 준수하기 위한 대안들을 속속 내놓고 있지만 이 또한 거래소들의 협업이 녹록지 않아 요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래블룰은 FATF가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부과한 의무로, 코인을 이전할 때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정보를 사업자가 파악하라는 규정이다. 국내 시행 시기는 내년 3월이다.
FATF는 지난달 28일 가상자산 관련 위험기반접근법 지침서 개정안을 채택했다. 가상자산 송금 시 송금자의 이름과 계좌번호, 주소, 송금자 이름과 은행 계좌번호를 기재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 전문가는 “FATF의 의견서를 보면 기술이 계속 진화되고 있어 전세계에 일괄되게 적용할 수 있는 솔루션이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다”며 “기재하도록 한 내용들도 정확한 정보인지 가려낼 수 없다고 인정하고 있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FATF가 트래블룰의 현실적 한계에 대해 고백한 상황. 트래블룰 준수 의무를 부여받은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가상자산 이전 시 송·수신인의 정보를 어디까지 관리해야 하는지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자금세탁방지 전문가는 “금융당국이 특정 컨설팅 업체에 의지하고 있는데, 해당 업체에서도 전문성 없이 트래블룰을 준수하라고만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송금 정보) 검증 여부에 상관없이 출금 정보 쪼가리라도 입력하라는 식이니 거래소의 리스크가 크다”고 지적했다.
현실적 한계에도 은행으로부터 트래블룰 준수를 조건으로 실명계좌 발급을 받은 만큼, 거래소는 올해 안에 관련 준비를 마쳐야 한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거래소 간 협업이 기대만큼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IT업계 전문가는 “각 거래소마다 자기들이 쓰는 표준응용프로그램환경(API)이 달라 인터페이스를 통합해 솔루션을 얹기 어려울 것”이라며 “일단 고객 정보 중 블랙리스트 정도를 만들어서 공유하는 정도가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더불어 거래소와 연계된 은행이 요구하는 자금세탁 방지 수준이 다르다는 점 또한 한계로 꼽혔다. CODE 관계자는 “자금세탁 방지에 대해 엄청나게 엄격하게 들여다보는 은행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은행이 있다”며 “신고 접수한 거래소들 결과도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연동할지 윤곽을 잡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박소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