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림 정치경제부 기자
엄마들은 군인보다 강해져야 했다.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힘겨운 싸움을 하려면 그래야만 했다. 같은 슬픔으로 만난 자리에서 부모들은 이 중사 엄마에게 “건강해야 한다”고 했다. 2014년 선임들의 가혹 행위 끝에 숨진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 씨의 첫 말도 그랬다. 윤 일병의 유족은 군 당국에 책임을 묻는 법정 다툼을 7년째 이어가고 있다.
가을날 만난 이 중사의 엄마는 겨울 패딩을 입고서도 몸을 떨었다. 그래도 조문객이 올 때마다 일어서서 “우리 예람이 정말 예쁜 딸입니다. 부디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했다. 엄마는 이를 악물고 치솟는 울음을 참아내다가도, 그렇게 아이 이름만 부를 때면 무너져내렸다. 영정 사진 속 파란 정복을 입은 이 중사는 꽃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전히 군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를 떠나 보낸 엄마·아빠들의 시간은 멈춰 있다. 한 유족은 머리를 짧게 깎고 훈련소 연병장에서 어설프게 경례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초등학교 입학식이 겹쳐 보인다고 했다. 이들은 오랜만에 휴가 나온 자식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더 먹이지 못한 무거움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지난 3일, 군사상유가족협의회가 국회를 찾았다. 이들은 죽음의 성격을 따져가며 순직 유형을 구분하는 군 행정 탓에 자식들의 죽음을 복기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날을 보냈다. 진실규명은 요원하고, 보훈정책을 쫓아 이 부처 저 부처 다니면서 분노와 좌절감만 커졌다.
군 당국은 공정한 수사와 책임 규명을 통해 ‘책임감’을 증명해내야 한다. 그게 ‘국방의 의무’를 다한 이들에 대한 예우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다. 더는 엄마들이 ‘강해져야 한다’고 다짐하는 날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치가 이들의 손을 잡아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