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체로키'는 어느 시대에서나 지프(Jeep)의 최고봉이었다.
5세대로 거듭난 새 모델 역시 마찬가지. 다양한 첨단 전자장비를 차 안에 가득 채우는 한편, 넉넉한 차 길이를 바탕으로 지프 최초의 3열 SUV로 등장했다. 늘어난 차 길이를 강조하기 위해 기어코 이름 끝에 알파벳 이니셜 ‘L’도 추가했다.
무엇보다 지프가 처음으로 고급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프리미엄' 모델이기도 하다.
◇축간거리 3m 넘어서는 대형 SUV
미디어 시승회는 12월 둘째 주 열렸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 미디어 시승회 대부분이 규모를 줄였다. 대신 소규모 행사를 여러 번 진행하는 방식으로 틀을 바꿨다.
시승 코스는 서울 강남 스탤란티스 코리아를 출발해 경기도 용인을 왕복하는 약 80㎞ 구간.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 등으로 이어진다.
지하 주차장에서 만난 그랜드 체로키 L의 첫인상은 역시나 “크다”였다.
차 크기만 따졌을 때 현대차 팰리세이드와 너비(1975㎜)는 같되 길이가 24㎝ 길고, 높이는 2.5㎝ 더 높다.
늘어난 차 크기에 걸맞게 내용물도 모두 큼지막하다. 전조등과 프런트 그릴, 휠 아치, 사이드미러 등이 마음껏 크기를 키웠다.
무엇보다 지프가 새롭게 도입한 이른바 ‘샤크 노즈’ 디자인도 눈여겨 볼만하다. 차 앞머리가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여느 차와 달리, 보닛 끝단을 정점으로 전조등과 그릴ㆍ범퍼 등은 뒤쪽으로 잡아당겼다. 상어의 코를 형상화했다는 게 지프의 설명이다.
육중한 운전석 도어를 열고 올라서면 광활한 실내가 펼쳐진다.
앞뒤 차축 사이의 거리인 휠베이스(3090㎜)는 기어코 3m를 넘겼다. 넉넉하게 뽑아낸 휠베이스 덕에 1~3열까지 어느 자리에 앉아도 “여긴 내 자리” 싶은 여유가 물씬 풍긴다. 1열에서 2열로, 다시 3열로 자리를 옮겨가며 넉넉한 실내를 체감한다.
트림은 크게 두 가지다. 기본형인 △오버랜드와 최고급형 △써밋 리저브 등 2가지. 시승 차는 2열 시트를 독립식으로 갈라놓은 6인승 최고급 모델이다.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와 룸미러를 바라보니 저 멀리 끝자락에 3열 시트가 자리한다. 이제껏 타봤던 지프 가운데 가장 큰 차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프리미엄을 강조한 만큼, 손에 닿고 눈길이 머무는 곳곳에 고급장비를 가득 채웠다.
서울 도심을 벗어나 시승의 중간 기점인 경기도 용인으로 출발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도심 정체구간. 커다란 차 안에 올라앉아 다른 차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차 등급은 물론, 맞비교 대상도 아니지만 출발한 이후 자꾸만 현대차 팰리세이드와 견주고 있다.
두 차를 나란히 세워보면 단박에 팰리세이드는 작은 SUV로 돌변한다. 그만큼 그랜드 체로키 L의 크기와 존재감이 크다. 대형 SUV를 선호하는 국내 운전자의 성향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엔진은 크라이슬러 시절부터 이름난 V6 펜타스타 엔진을 얹었다. 배기량 △3.0 △3.4 △3.6ℓ까지 변화무쌍하게 변신할 수 있는 엔진이다.
국내에는 이 가운데 최고봉인 V6 3.6ℓ, 최고출력은 286마력 엔진을 선보였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렸다.
오프로드의 왕좌 지프답게 네 바퀴 굴림 시스템도 차별화했다. 변속기 주변에 자리한 셀렉트 레버로 주행 조건에 따라 5가지 모드를 고를 수 있다. 이른바 ‘셀렉-터레인(Selec-Terrain®)’이다.
정체구간을 뚫고 경부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의외로 소극적이다. 여느 국산 및 수입차와 비교하면 ‘안전’에 치중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예컨대 저속주행하던 앞차가 차선을 양보하고 비켜서면 이를 끝까지 기다린 뒤 가속한다. 앞차가 차선에서 벗어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정해진 속도를 맞추는, 독일 차의 성급함과 차원이 다르다.
앞차가 완전히 차선을 벗어나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린 뒤 스스로 가속한다. 살짝 답답할 수도 있으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응당 이래야 맞다.
중속에서 추월 가속에 나서면 엔진은 반 박자 늦게 반응한다. 반면 8단 자동변속기는 제법 발 빠르게 최적의 기어를 찾아다닌다.
킥 다운(급가속)하면 곧바로 변속기어를 낮추는 게 아닌, 두 번에 걸쳐서 회전수가 솟구친다. 다분히 엔진과 변속기를 보호하기 위한 세팅이다.
시속 100㎞를 넘나드는 사이 대배기량(3600㏄) 자연 흡기 엔진의 여유로움도 즐길 수 있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코드네임 WL)은 구형(코드네임 WK2)보다 서스펜션이 한결 단단해졌다. 노면 위의 작은 요철은 탄탄한 서스펜션과 육중한 차 무게로 짓이겨버린다.
그랜드 체로키는 ‘어디든 갈 수 있고(Go anywhere), 무엇이든 할 수 있다(Do anything)’를 내세운다.
그만큼 오프로드 성능이 뛰어나고 다양한 활용성을 자랑한다. 새로 등장한 그랜드 체로키 L은 여기에 프리미엄과 7인승이라는 하나의 명제를 더 얹게 됐다.
가격은 7980만~8980만 원. 국산 고급 차 브랜드의 대형 SUV에 옵션을 가득 채우면 9000만 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를 고려하면 이해할만한 가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