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을 활용한 환치기(무등록외국환업무)를 막기에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취득자의 신고 의무나 제재 권한에서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관세청의 차이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관련한 허점을 메꾸기 위해 가상자산의 성격을 재고하거나, 외국환거래법상 가상자산이 외환에 해당할 수 있을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7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특금법 내 자금세탁방지 의무로 가상자산 환치기를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해 불법재산 등으로 의심되는 거래나 금융회사 등의 고액 현금거래에 대해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보고토록 규정하고 있다. 외국환업무를 업으로 하려는 자는 충분한 자본ㆍ시설 및 전문인력을 갖춰 기획재정부장관에게 미리 등록도록 하고, 외화 송금 시 개인ㆍ기업이 사전에 직접 신고하게 규정한 외국환거래법과 차이를 보인다.
특금법 관련 자문을 여러 차례 맡은 한 변호사는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외화의 취득ㆍ전송 등에 대해 한국은행ㆍ관세청이 자금 흐름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필요 시 불법성을 따질 수 있다”라며 “가상자산의 경우 투자자 개인이 아닌 거래소가 선별적으로, 필요한 경우 의심거래 보고를 하도록 해 빈틈이 커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변호사 또한 “해외 거래소를 통해 코인을 전송하고 현지 통화로 바꾸면 외화를 송금하고 환전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나지만 신고 의무가 없다”라며 “가상자산이 중간에 활용되면서 국부가 유출되고 자금세탁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치기 발생 시 제재력에서도 FIU와 관세청 간 차이가 두드러진다. 관세청은 외국환거래 심사 업무와 지급수단 등 불법수출입사범 등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가상자산을 이용해 환치기를 한 계좌 운영주 21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외국환거래법 제27조의2 제1항에 따르면 환치기 행위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반면 FIU는 거래소로부터 의심거래에 대한 보고를 받지만 관련한 수사권을 쥐고 있지 않다. 금융사나 가상자산 거래소로부터 의심 거래 및 고액 현금 거래 내역을 보고받은 후 이를 수집ㆍ분석한다. 불법 소지가 있으면 수사 당국에 해당 자료를 제공하는 식이다.
실제 지난해 화천대유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유사한 문제가 노출된 바 있다. FIU는 화천대유 법인 계좌에서 현금 수십억 원이 인출된 사실을 인지, 경찰에 제공했지만, 늑장 수사에 확인이 지체됐기 때문이다. 당시 국정감사차 국회에 출석한 김정각 FIU 원장은 “현행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FIU가 수사기관 역할을 모니터링할 장치는 없고, 법 집행기관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최종적으로 마지막 단계에서 대략적인 통보만 받는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신고 의무가 추가되거나, 가상자산의 특성을 고려한 업권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법조 전문가는 “가상자산을 투자나 결제 수단이 아니라고 발생하는 문제들”이라며 “(환치기를 막으려면) 외국환거래법상 가상자산 전송을 신고 대상에 넣는 것이 필요한데, 가상자산을 외화나 투자ㆍ결제 수단으로 인정하는 방향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전했다.
업계 전문가 또한 “특금법은 자금세탁에 한정돼있어 계속 발전하는 가상자산의 성격을 따라잡기 힘들다”라며 “가상자산을 다루는 사람들의 경험에 맞춘 업무 권역법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