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모의실험 연구사업 1단계를 차질 없이 완료했다고 밝혔다. 클라우드에 구현한 CBDC의 기본 기능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며, 향후 NFT(대체불가토큰) 구매, 개인정보보호 등 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가상환경에 구현한 CBDC가 실제 가동 가능할지, 국제 표준과 발맞춰나갈 수 있을지 등은 숙제로 남았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31일 ‘CBDC 모의실험 연구’ 용역사업에 착수했다. 대내외적으로 CBDC의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는 가운데, CBDC의 기술적 구현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서다. 한은은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를 수행사로 선정했고, 지난해 12월 22일 1단계 사업을 마무리했다.
1단계 사업에서는 CBDC의 기본 기능이 작동하는지를 실험했다. 클라우드에 모의실험 환경을 마련, 제조ㆍ발행ㆍ유통 등이 구현되는지를 점검한 것이다. 중앙은행이 CBDC를 제조ㆍ발행을, 참가기관이 유통을 맡았다.
유희준 금융결제국 디지털화폐기술반 반장은 “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국제결제은행)에서도 현재 금융시스템에 큰 혼란을 주지 않는 형태에서 도입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라며 “조화롭게 운영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만큼 혼합형으로 실험을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발행준비 지갑을 만들면 참가기관이 한국은행으로부터 CBDC를 지급받아 이용자에게 전달한다. 각각 거액용, 소액용으로 나눠 테스트했다.
거액 결제시스템에서는 참가기관과 한국은행 간 CBDC의 교환이 일어난다. 참가기관이 지급준비금을 제공하면 한국은행이 보유한 CBDC를 발행하는 형태다. 소액 결제시스템에서는 참가기관이 보유한 CBDC를 이용자와 교환한다. 한국은행이 이용자의 수요를 일일이 처리하지 않고, 참가기관에 CBDC를 분배하면 참가기관이 중간에서 이를 대행하는 형태다.
모의 환경에서 실험을 진행한 만큼, 실제 환경에서도 CBDC가 동작할지는 추가 실험의 숙제로 남겨졌다. 한은은 올해 6월 2단계 사업 종료 후 해당 기능 점검을 확대 수행할 계획이다. 실제 서비스 환경과 발맞추기 위해 1분기 중 금융기관 등과 협의를 진행한다.
유 반장은 활용 방안 논의 시 가장 중점적으로 볼 요소에 대해 “구현한 실험이 실제 환경으로 나아가면서도 정상적으로 동작할지를 체크하려 한다”라며 “시장에서 과연 CBDC 활용성 측면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가졌는지, 해당 아이디어를 청취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라고 밝혔다.
한편 한은은 2단계 사업에서 오프라인 결제 기능을 테스트할 예정이다. 통신사 장애, 재해 등으로 네트워크가 단절된 상황에서 보조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점검하기 위함이다. 송금인과 수취인 모두 인터넷 통신망과 연결이 끊어져도 근거리무선통신(NFC)을 통해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향후 CBDC가 이종 간 플랫폼에서 동작할지 여부 또한 숙제로 남았다. 한국은행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허가형 분산원장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타 플랫폼과 문제없이 CBDC를 통해 지급 및 결제가 일어나는지 점검하기 위해 디지털예술품, 저작권 등을 CBDC로 거래할 수 있도록 기능을 지원한다.
유 반장은 NFT 거래를 CBDC로 지원 가능할지에 대한 질문에 “어떤 자산이든 다양한 지급수단을 이용해 활용되는 것이 현재 실물 시장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며 “NFT 시장에서 추후라도 나중에 CBDC가 활용된다면 그런 형태로도 가능할 것이라 예상된다”라고 갈음했다.
한편 서버 안정성과 표준화에 대한 요구 또한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13일 그라운드X와 연계된 클레이튼 네트워크는 약 37시간 동안 셧다운됐다. 관련 코인들의 입출금이 중단됐고, 클레이튼을 기반으로 한 NFT의 발행ㆍ판매ㆍ전송이 막혔다. 2020년 3월에도 알고리즘 문제로 네트워크 전체가 멈추기도 했다.
한은은 클레이튼이 운영하는 공개형 블록체인과는 다르게 CBDC가 구성됐다고 선을 그었다. 그라운드X의 사고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CBDC 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유 반장은 “금융시장인프라 감시지침서(PFMI)에 따르면 2시간 이내에 시스템 다운을 복원해야한다”라며 “CBDC 도입 시점에서 가장 안정적인 기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 간 송금 서비스 표준화 또한 발맞춰나갈 예정이다. 이날 한은이 발간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주요 이슈별 글로벌 논의 동향’에 따르면 모든 국가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최적의 CBDC 설계 및 운영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은은 모의실험 2단계에서 국가 간 송금 서비스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해 한은은 중앙은행과 국제표준기구 양 사이드에서 글로벌 표준을 만들기 위한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술적 이슈를 살펴보고 국가 간 송금이나 디지털자산 거래, 이종 플랫폼 간 연계를 안정적으로 도모해나가는 방안을 살펴본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