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을 통해 우리가 행하고 있는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시청자들이 바라보며 폭력의 비극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어른이 돼서 그 뜨거운 마음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상기시키고 싶었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연출한 이재규 감독이 작품의 연출 의도를 이같이 밝혔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K-좀비 열풍을 일으키며 ‘오징어 게임’의 뒤를 잇는 히트작으로 꼽힌다.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TV쇼 부문 순위 1위에 오른 뒤 9일째인 전날까지 정상을 지키고 있다.
7일 화상으로 만난 이재규 감독은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정상을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 “신기하고 얼떨떨하다. 예상은 못 했지만, 진심을 갖고 만들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정서나 이야기들을 느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었다”고 말했다.
작품은 학교를 배경으로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진 비극과 생존을 위한 인간의 사투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기존 좀비물의 공식에 학원물을 결합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학내 문제뿐만 아니라 계층 문제, 기성세대의 무관심 등 현실을 고발하는 메시지 담고 있는 것이 작품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학교 폭력과 임대 아파트에 사는 ‘기생수’(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지금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춰낸다.
“표면적으로는 학교 폭력이라는 이야기를 가져왔지만, 학교와 사회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뿐만 아니라 어느 집단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보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길 바라죠.”
극 초반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장면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만큼 선정적이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학폭 가해자들이 여학생의 옷을 벗기고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겠다고 협박을 가하는 장면과 여고생이 화장실에서 남몰래 출산한다는 설정 등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지적이다.
“원작은 훨씬 강한 부분이 많았는데 영상화하면서 순화를 시켰고,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만들었어요. 청소년 시청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보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주제 의식을 표현하는 데 있어 청소년 관람 불가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하게 보여줘서 시청자를 자극하려고 한 것은 전혀 아니에요. 과하게 전달됐거나 불편한 분들이 있었다면 연출자로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 감독은 작품의 캠코더 촬영 장면 등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좀비에게 쫓기다 거의 희망을 잃어갈 때쯤 학생들은 캠코더를 통해 마지막이 될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다. 이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특정 사건만을 모티브로 한 것은 아니라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다.
“세월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참사도 그렇고 있을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났어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사건 사고가 극에 녹아있죠. 특정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극을 구성하려 한 건 아니에요. 일어나서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고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들여다 보려하는 관점들이 극에 담겨있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앞서 글로벌 히트를 친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 감독은 황 감독과 절친이라고 밝히며 ‘오징어 게임’과의 비교에 대해 부담을 크게 느꼈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1위 하는 걸 보고 너무 놀랍고 신기했어요. 황 감독에게 전화해서 농담 같은 덕담을 주고받았죠. ‘오징어 게임’은 ‘넘사벽’이에요. 비교되는 것 자체가 부담이죠. 하지만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세계가 한국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 창문을 통해 한국 콘텐츠가 더 많이 잘 전달됐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인해 일어나는 비극을 그리는 작품이지만, 이 감독은 그럼에도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시즌2 제작 가능성에 대해서는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저는 사람을 믿고 싶고, 희망을 찾으려는 쪽입니다. 작품에서 말하는 좀비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는 이야기는 결국 희망도 사람에게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즌2를 연계해두고 설정해 둔 부분이 있긴 해요. 시즌 2가 나온다면 좀비들의 생존기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