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수요 회복과 공급 부진 겹쳐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요인도
가격 상승에 자원 민족주의 움직임도
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을 추적하는 레피니티브 CRB지수는 1월 말 기준 전년 대비 46% 상승했다. 1995년 이후 27년 만의 연간 최대 상승 폭이다.
주요 22개 품목 가운데 원유를 비롯한 9개 품목 가격은 50%를 뛰어 넘었다. 커피가 91%로 가장 많이 올랐고 면화 58%, 알루미늄 53%의 상승 폭을 기록했다.
원자재 시장은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압박이 발생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후 경기가 회복하면서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공급망 붕괴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공급은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의 경우 탈탄소 정책으로 공급이 제약을 겪으면서 수요 회복세를 따라가는데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를 놓고 러시아와 서방국가 간 대치까지 심화하면서 에너지 대란을 부추기고 있다.
데이비드 로슈 유가 전문 애널리스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에 확실히 이를 것”이라며 “미국과 동맹국이 러시아에 가혹한 제재를 가하면 유럽 증시와 세계 경제 전망은 급격하게 바뀔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에너지 가격 상승은 생산 과정에서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는 알루미늄의 제조 비용 증가로 이어져 제련 기업들의 감산을 촉발했고, 비료의 주성분인 암모니아의 제조 비용을 높여 곡물 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원자재 간 연쇄 반응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치솟는 원자재 가격에 세계 경기 회복이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종전보다 0.5%포인트 하향한 4.4%로 제시했다. 당시 IMF는 하향 요인 중 하나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50%를 넘는 국가는 전 세계 143개국 중 47개국으로 집계됐다.
에너지의 70%를 수입하는 터키는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49% 상승했고, 이달 들어서 에너지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민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다.
수입 의존도 50%인 쿠바에서도 지난해 7월 이례적인 대규모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쿠바 시민들은 미국발 제재와 이로 인한 공급망 혼란, 화폐 가치 절하 등으로 소비자물가가 치솟자 거리로 나왔다.
최근엔 카자흐스탄에서 자동차 연료 등에 쓰이는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유혈 사태로까지 번져 당국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러시아군의 개입을 허용하는 일도 벌어졌다.
각국 식품 가격도 비상이다. 태국에선 1월 돼지고기 가격이 3개월 전보다 50% 가까이 치솟았고 가축 사료로 활용되는 콩과 옥수수 역시 상승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석탄이나 식료품의 원료로 활용되는 팜유 가격이 치솟자 급기야 정부가 수출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자국 자원을 지키려는 ‘자원 민족주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닛케이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부 국가에선 가격 상승이 정세 불안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며 “자원 민족주의가 글로벌 가격 상승에 압력을 주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