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에 선수, 코치진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뭉클해졌는데요. 그 금메달을 얻기까지의 여정이 너무나도 지독했기 때문인데요. 모든 한국인의 정신건강에 격하게 해로웠죠.
9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황대헌은 2분9초219의 기록으로 1위를 기록했는데요. 스티븐 뒤부아(캐나다), 세묜 옐리스트라토프(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죠.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황대헌은 두 팔을 벌리며 환호했고요. 코치진에게 달려가 격한 포옹을 나눴죠. 같이 결승에 함께한 이준서, 박장혁 선수도 금메달을 축하했습니다.
우승 인터뷰에서 황대헌은 “오늘은 더 깔끔한 경기를 준비했다”라며 “깔끔한 경기 중에 가장 깔끔하게 경기를 하는 것을 전략으로 세웠다”라는 비결을 밝혔는데요. ‘깔끔한 경기’를 강조한 황대헌. 왜 그토록 깔끔을 외쳤던 걸까요?
경악과 충격의 그 경기 때문이었죠.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4일 차,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에서 벌어졌는데요. 앞서 준준결승에서 피에트 시겔 선수(이탈리아)가 박장혁을 추월하려다 스케이트 날이 충돌했고, 넘어진 박장혁은 다시금 우다징(중국)과 충돌해 손가락 부상을 입었죠. 결국, 들것에 실려 나간 박장혁 선수는 준결승에 진출하고도 경기에 임할 수 없었습니다.
심란한 분위기 속 황대헌 선수의 준결승 1조 경기가 시작됐는데요. 황대헌은 결승선을 4바퀴 남기고 안쪽을 노려 중국의 런쯔웨이, 리원룽을 모두 제치며 선두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황대헌은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하며 멋진 경기력을 선보였죠. 그런데 심판진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황대헌이 1위 자리를 뺏는 과정에서 레인 변경을 늦게 했다는 판정으로 실격처리를 해 버렸는데요. 이로 인해 탈락한 황대헌 대신 중국의 런쯔웨이와 리원룽이 결승에 올라갔죠.
2조 경기에서 2위로 통과한 이준서도 같은 실격처리가 됐는데요.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비디오 판독 끝에 레인 변경 반칙 판정을 받았죠. 황대헌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한국 선수의 실격으로 중국의 우다징이 결승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어처구니없고 뒷목을 잡을 일이 두 번이나 반복되자 한국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는데요. 이럴 줄은 알았지만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는 한탄이 한국을 뒤덮었습니다. 포털사이트와 SNS에 ‘편파 판정’에 대한 분노의 글을 쏟아졌죠. 이번 올림픽이 중국 홈 어드벤티지가 계속될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이어지며 “한국 선수들 더 험한 꼴 보지 말고 보이콧 하고 돌아와라”는 격한 반응이 힘을 얻었습니다.
이런 분노의 마음은 모두가 같았는데요. 여자배구 김연경 선수도 방탄소년단 RM도 이런 마음을 담은 SNS 글을 게재했습니다. RM이 올린 인스타스토리에는 황대헌 선수의 멋진 인코스 추월 영상과 함께 박수 이모티콘이 함께했죠. 그러자 난리가 났습니다.
중국 네티즌의 악플테러가 시작된거죠. 이들뿐 아니라 박승희 해설위원도 출전 선수들의 인스타그램에도 악플이 이어졌죠. 중국어와 토하는 이모티콘이 이들의 인스타그램에 도배됐는데요. 특히 RM의 인스타그램엔 답글을 달 수 없어 방탄소년단 공식계정에 악플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24시간 깨어있는 전 세계의 아미들이 보라색 하트로 댓글을 뒤덮었고 중국 네티즌들은 그저 힘없이 밀려났죠.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국 CCTV 해설위원인 전 쇼트트랙 선수 왕멍은 한국 선수들이 넘어지자 "잘됐다"는 망언을 방송에서 하기도 했고요. ‘편파판정’의 수혜로 금메달을 딴 런쯔웨이는 “한국 선수들 자빠진 것 평생 기억하겠다”는 인성 수준을 보여주는 발언을 내뱉었죠.
한국 선수단은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편파판정에 대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또 국제빙상연맹(ISU)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항의 서한문을 발송하기도 했는데요. 무엇보다 선수단과 국민 모두 어이없는 판정을 받은 선수들의 멘탈을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그저 멋졌습니다. 더러운 판정에 무너질 그들이 아니었죠. 취재진도 모두 조심스럽게 다음 1500m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준비과정을 물었는데요. 황대헌은 웃는 모습으로 “앞으로가 더 많이 남았는데 밥도 잘 먹고 더 잘 자야 앞으로의 일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며 “그래서 어제(7일 판정 시비 후)도 잘 자고 잘 먹었다”라는 대인의 면모를 보였죠. 국민들이 안심이 된 그저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따스한 순간은 또 있었는데요. 한국 선수들의 훈훈한 미담이 들려왔습니다. 쇼트트랙 경기에 단 1명만이 출전한 터키 대표팀을 위한 배려였는데요. 1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터키는 단독 경기장 훈련을 할 수 없어 한국 선수단과 같은 시간에 훈련하게 된 건데요. 터키 국가대표 19살 푸르칸 아카르은 한국 선수단과 함께 주행했고요. 코치들의 지도 시간에는 귀동냥으로 내용을 엿들으며 열심을 보였다고 하죠.
해당 소식이 들려오자 역시 ‘깐부’의 나라라는 평이 나왔는데요. 깍두기를 포기하지 않는 민족답다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터키 선수의 경기 복장이 붉은색이어서 더 웃음을 자아냈죠.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그 말 그대로 선수들은 9일 경기에 심판이 제기했던 레인변경 추월 반칙을 넘을 아웃코스 추월과 아웃코스 질주로 깔끔한 승리를 얻었는데요. 선수들만큼이나 국민도 이 분노의 상황을 해학으로 넘어섰습니다.
각종 패러디물과 글, 이미지를 게재하며 더러운 마음을 씻겨 내려갔죠. ‘눈 뜨고 코 베이징’, ‘시진핑배 동계체육대회’, ‘짜장맛 체육대회’, ‘스치기만 하면 실격’ 그저 헛웃음이 동반되는 수많은 짤들이 그래도 이 킹받는 순간을 이겨내게 했는데요. 황대헌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경기에서도 중국 선수 위치를 먼저 파악하게 되는 현실이 그저 ‘짜증 유발’이라는 허탈한 소감들도 웃프게 했죠.
앞으로 남은 경기는 제발 우리의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제발 부디, 경기는 경기로만 즐길 수 있는 그저 ‘경기일 뿐’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