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전 필요 병력 80% 배치 완료
장거리포·로켓, 발사 위치로 옮겨
공격하지 않고도 이미 푸틴 승리했다는 평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사회와 협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 위치로 이동시키는 등 공격 태세를 더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푸틴 대통령이 병력을 강화하면서 위협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한편 서방사회에 협상 가능성을 흘리는 ‘양동작전’을 펴고 있다는 평가다.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대화로 풀어갈 여지를 뒀다. 이날 러시아 국영 방송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푸틴 대통령의 회의 내용을 보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서방과 러시아의 협상에 대해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며 “협상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은 짧게 “좋다”고 답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임박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이 모호하게나마 외교적 해법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NYT는 러시아가 즉각적인 공격 대신 서방과 협력을 모색한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경의 움직임은 이와 다르다. 지난 주말 새 러시아는 국경 병력 태세를 더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측 분석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된 러시아의 대대 전술 부대는 이달 초 83개에서 105개로 늘어났다. 500대의 전투기를 이동시켰고 흑해에는 전투함 40대도 배치했다. 미 CBS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최근 장거리포와 로켓 발사대를 발사 위치로 옮겼으며 일부 부대는 공격 위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전면전을 벌이기 위해 필요한 병력의 80% 배치를 마친 상태로, 그야말로 푸틴의 결단만 남은 상황이다.
금방이라도 전쟁을 벌일 것처럼 병력을 움직이면서 한편으로 대화 가능성을 흘리는 것이다. 일종의 ‘양동작전’인 셈이다. 러시아의 의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위협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우크라이나와 서방사회를 흔들고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다고 분석한다. 무력 과시로 우크라이나 경제에 타격을 주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권을 흔들면서 서방의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 텔레그래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를 조성한 러시아가 실제 침공하지 않고도 이미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이겼다고 평가했다. 전쟁 가능성을 키울 때마다 각국 지도자가 푸틴을 만나러 달려가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할 수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우리에게 나토 가입은 꿈과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지금까지 단호하게 버티던 데서 양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NYT는 해석했다.
러시아의 대화 제스처가 공격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의견도 있다. 마이클 맥폴 전(前) 주러 미국 대사는 CNBC와 인터뷰에서 “푸틴이 전쟁을 멈출 것이라는 신호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경고 없이 군사 행동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러시아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서 위조 공격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러시아의 공격을 기정사실화하는 미국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있는 대사관을 폐쇄하고 폴란드 국경 근처 르비브로 이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푸틴 대통령의 15일 회담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전 세계가 끝내 전쟁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지 푸틴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