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전역처분취소소송 판결 의미 토론회' 열려
"외롭고 힘든 싸움보다 모두를 위한 싸움"
"한국 사회 인권 문제가 드러난 사건"
"군, 특수성 앞세워 인권 사각지대로 남아선 안돼"
고(故) 변희수 전 하사가 군을 상대로 낸 전역 처분 승소 판결문의 한 줄이다. 판결문 말미에는 성소수자 인권 등을 고려해 정부가 정책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는 언급도 있다. 변 하사가 겪은 차별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변희수 하사 전역처분 취소소송 판결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는 그가 남긴 한국 사회의 숙제를 되짚어보기 위해 마련됐다.
판결문 내 ‘성소수자에게는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라는 대목을 주목한 배경에 대해선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판결문의 행간에서 미안함, 슬픔,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다. 더 늦기 전에 정책당국은 성소수자들이 모든 영역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입법적 정책적 결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변 하사는 군의 변론 과정에서 2차 가해를 견뎌야 했다. 지난해 군 당국은 소송진행과정에서 준비서면을 통해 '성전환자는 부대 내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장병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 '트랜스젠더 병사와 함께 근무하게 되면 다른 장병들의 임무수행이 곤란해져 다른 장병들의 인권을 침해한다' 등의 내용을 명시하면서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차별은 변 하사만의 일이 아니다. 2005년 병역면제처분을 받은 트랜스여성에 대해 병무청이 9년이 흐른 뒤 병역기피 혐의로 고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외과수술을 받지도 않고 여성스러운 외모를 갖추지도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2015년 서울행정법원은 "원고의 성향ㆍ언행ㆍ직업ㆍ주변인 등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장기간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하여 상당한 수준의 혼란을 느껴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병무청은 해당 처분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항소를 포기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한희 변호사는 "해당 사건은 취소소송으로 이기긴 했지만 변 하사 사건을 참관하면서 느꼈던 건 당시 국방부가 펼쳤던 혐오논리가 이 사건의 병무청 논리와도 비슷하다는 것"이라고 힘줘서 말했다. 이어 "그때 자신들이 잘못된 표적 수사를 했던 사건에 패소했다면 그것을 교정하고 교육하고 수정했어야 했는데 안 고쳐진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8년 전에 있었던 무지와 혐오 논리가 그대로 계속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대는 '특수성'을 이유로 혐오와 차별을 침묵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토론회 발표자인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군 인권 침해 근본에는 군이 늘 특수한 조직이라는 자기들의 어떤 변명을 앞세워서 인권 사각지대로 계속 남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데 있다"며 "군이 본인들의 특수성을 이유로 외부 견제나 어떤 권고를 전혀 수용하지 않는 오랜 역사의 연원이 비극적인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 하사의 사건을 군대만의 문제로 한정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군대 말고도 한국사회에서 트렌스젠더가 '가시화'되거나 정책 대상으로 되어 있는 곳이 있는지, 트렌스젠더 인권 가이드라인 같은 것을 보유한 조직이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군대 역시 사회의 일부이고 국방부 역시 정부의 한 부처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사회의 인권 수준의 후진성이 그대로 반영된 문제"라며 "만약 한국사회에서 트렌스젠더 인권 수준이 높았다면 군 역시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인성 서울서부지방법원 부장판사도 국내 성별 결정의 기준 및 성별 정정 요건에 대한 판례 흐름을 살펴보면서 "성별 정정에 관하여 판례는 보다 포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성별 정정이 이루어짐을 전제로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변 하사의 사건처럼 트렌스젠더에 대한 사회적ㆍ법적 차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다양성 인정을 토대로 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국방부가 진행하는 트렌스젠더 군복무 정책 연구 역시 획일적이고 단편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는 우려도 함께 나왔다. 현장에선 트렌스젠더를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변 하사의 일화도 언급됐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변 하사도 이력서도 넣고 여러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어떤 곳들은 면접도 가지 못하고 끝나기도 했다"며 트렌스젠더의 노동권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소속 이드 팀장도 "고용기회는 평등해야 한다"며 "직무수행에 불필요한 구직자의 개인정보 수집은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변 하사에게 필요했던 것들'이라는 이름으로 △공교육 및 학교 밖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위한 상담 및 치료 △국가건강보험으로 트랜지션을 보장받을 권리 △실직ㆍ복직 시 일상 유지를 위한 복지 체제의 지원 등을 제시했다.
변 하사의 주치의였던 이은실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는 트렌스젠더의 의료권을 강조하면서 "사회 제도적으로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정신 질환이 아니며 이들이 필요로 하는 의학적 조치가 이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임을 인식하고 이들이 우리 사회의 보장제도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