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사업 구조가 거기서 거기라 사실 이름만 가려놓으면 잘 구분이 안 가죠?”
금융부로 인사이동이 발표된 뒤 만난 시중은행 관계자에게 은행별 특징에 관해 묻자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상품별 차이는 있을지언정 개인·기업금융을 큰 틀로 하는 전반적인 사업 구조에는 차별점이 없단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어느 은행만의 ‘비장의 무기’는 없다는 말로도 들렸다. 별미 메뉴를 개발하지 않아도 고객들이 몰려드는 푸드코트라고나 할까.
이러한 은행업에 ‘플랫폼’을 등에 업은 빅테크가 진출하며 금융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항상 사람들이 몰리던 푸드코트 옆에 별미가 있는 유명 맛집이 등장한 꼴이었다. 처음에는 개점 효과라고 치부했지만, 디지털 기반의 편의성을 무기로 한 빅테크는 순식간에 고객을 끌어들였다.
전통 은행권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어느 은행이든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며 빅테크에 대응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은행들은 동일 금융그룹 내 카드, 보험사들과 힘을 합쳐 자체 통합 금융 플랫폼을 내놓았다. 또,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내 손 안의 금융비서’라고 일컬어지는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서비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번에도 딱히 별미는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잘하는 것을 하겠다”라고 선언한 전통 은행권은 또다시 모두가 잘하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마이데이터를 통해선 전 생애에 걸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통합 금융 플랫폼을 확장한다며 헬스케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은행 이름만 다를 뿐이다. 고객으로선 푸드코트가 전반적으로 개선됐으나, 이곳에 꼭 가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요한 페터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에서 괴테는 어떤 사람이 이뤄낸 작품이나 행동의 양이 많다고 해서 생산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생산성이 있다는 것은 지속해서 영향을 끼치고 쉽사리 소진되지 않는 생명력이 있는 행위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전통은행이 디지털 전환을 외치며 생산성 있는 경영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간다. 미래 금융을 지향한다며 선보이는 서비스는 많으나 과연 이 서비스가 생산성을 갖췄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고객들은 이미 빅테크의 생산성 있는 혁신을 맛봤다. 은행권이 빅테크라는 큰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선 차별화된, 생산성 있는 결과물을 제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