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 대신 집필…문학평론가·언론인·작가·교수 등으로 활약
“나는 곧 죽을 거라네. 그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쏟아놓을 참이야.…진짜 전하고 싶은 유언은 듣는 사람을 위해서, 듣는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로 한다네”_이어령의 마지막 수업(2021)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질문에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장관이 마지막 답을 하고 세상과 작별했다. 향년 88세.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유족 측은 이어령 전 장관이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이어령 전 장관은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고인은 서울대 국문학과 재학 중이던 1956년 비평가로 등단한 뒤 문학을 바탕으로 인문학 전반을 아우른 지성의 필력을 휘두르면서 60여 권의 저서를 냈다.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다.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이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가 문화 연구자로서 내놓은 저서 중에는 1982년 일본어로 발간된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불어로도 번역된 이 책은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이 전 장관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저서 집필에 몰두해왔다. 77세에 시작한 집필을 88세에 마무리했다. 책은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 전 장관과 저자(김지수 기자)의 대담을 묶었다. 이 교수와 저자는 죽음과 삶, 예술과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천안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지역 검사를 지냈다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