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3월 종료할 예정이었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코로나19 대출’의 만기연장과 원금·이자 상환유예 조치를 다시 6개월 연장키로 했다. 2020년 4월 시행한 이후 4차례 연장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그제 시중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자영업자의 경영이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국회가 지난달 소상공인 등에 방역지원금과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한 16조9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하고, 만기연장·이자상환유예 조치의 추가연장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에 대한 금융지원의 필요성은 강조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의 부채가 누적된 상황에서 또다시 일률적인 만기연장과 상환유예로 당장의 위기를 넘긴다 해도 결국 부실 가능성만 높인다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게다가 앞으로 금리인상 기조가 뚜렷해지면서 취약차주들이 ‘부실폭탄’이 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작년 11월 말까지 금융권의 대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가 적용된 대출규모는 272조2000억 원에 이른다. 대출 건수는 100만 건을 웃돈다. 이 가운데 만기연장 채권잔액이 115조 원, 원금과 이자 유예 잔액은 각각 12조1000억 원, 5조 원이다.
이 같은 대출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연착륙 방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금리가 상승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작년 8월 이후 세 차례 0.25%포인트(p)씩 올렸고, 2월에는 일단 동결했지만 연내 2∼3차례의 추가인상이 유력하다. 연말 기준금리가 연 1.75%까지 오를 것이라는 게 시장의 예상이다. 원리금 상환이 유예된 대출의 잠재부실을 가늠하기 어려운 마당에, 지속적인 금리상승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취약차주들이 늘면서 부실화하는 대출채권이 급속히 불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계속 만기연장과 상환유예를 되풀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부실의 ‘폭탄’이 다음 정부로 떠넘겨지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선 후보들은 표심 얻기에 급급해 채무 탕감과 신용 대사면 등의 공약을 쏟아낸다. 빚 탕감은 막대한 세금을 필요로 한다. 안 그래도 지금 나라살림의 적자가 계속 불어나 재정이 악화하는 상황이다. 금융안정을 위협하고 도덕적 해이도 만연하면서 신용사회의 근간까지 흔들 수밖에 없다.
일률적인 대출 만기연장이나 원리금 상환유예보다는 취약차주와 부실 가능성이 높은 대출의 질서 있는 구조조정이 급선무다. 정부가 강제할 게 아니라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부실의 위험을 차단하는 연착륙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사업자별 신용정보를 바탕으로 상환능력 등을 고려해 부실대출을 단계별로 정리하고 가는 것이 앞으로의 부담을 줄이고 금융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