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별세] ‘한국의 디즈니’ 꿈꿨던 게임 산업의 선구자

입력 2022-03-02 13:17수정 2022-03-0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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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넥슨)

국내 1위 게임업체 ‘넥슨’의 창업주인 김정주 NXC 이사가 지난달 말 미국에서 별세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54세.

김정주 이사는 한국 벤처산업계의 1세대로 꼽히는 주축 인물이다. 넥슨을 창업해 게임 볼모지였던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을 개척해 온 주요 인물로 평가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관심 많았던 황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서울 토박이다. 어린 시절에는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김 이사의 아버지는 김교창 판사이며 어머니는 피아노를 전공한 이연자 여사다. 어린 시절 음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 악기를 잘 다루는 섬세한 아이였다고 알려져 있다. 악기에 빠져 학교를 가지 않을 정도로 몰두해 한번 집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을 어린 시절부터 드러냈다.

김 이사가 게임에 눈을 뜨게 된 시점은 중학생 시절이다. 김 이사의 지인에 따르면 당시 그는 광화문 교보문고의 컴퓨터 체험 시설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이 때부터 컴퓨터에 몰두해 게임이라는 산업에 눈을 뜨게 됐다는 전언이다. 그의 인생 첫 컴퓨터는 이모부인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로 순국)이 선물한 것이었다.

김 이사는 1986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86학번 동기동창에는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리니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가 있다. 동문으로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찬진 한글과컴퓨터 창업주 등이 있다. 김 이사는 이후 카이스트 전산학과에서 석·박사 과정까지 마친 뒤 1994년 넥슨을 설립했다.

‘바람의 나라’로 최초 온라인 게임 타이틀

김 이사가 넥슨을 설립할 당시 아버지는 6000만 원의 자금을 지원하며 힘을 보탰다. 그는 이 자금을 밑천으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온라인 게임 산업에 첫 걸음을 뗐다. 넥슨 설립 2년 뒤인 1996년에는 MMORPG ‘바람의 나라’를 출시하며 온라인 게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온라인 시장은 모뎀을 이용해 전화선으로 연결하던 PC통신 시절이었는데, 이를 활용한 게임 개념이 없던 국내에서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부족한 인터넷 환경으로 초반 동시접속자는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시대를 앞서나간 게임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정부가 IT 산업을 육성하면서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에 나서며 전국에 PC방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게임업체들은 이때부터 부랴부랴 인터넷 연결을 활용한 게임 개발에 나섰지만 이미 ‘바람의 나라’를 출시한 넥슨은 PC방 효과를 톡톡히 보며 국내 대표 온라인 게임으로 등극했다.

이후 넥슨은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 히트작을 줄줄이 내놓으며 국내 대표 게임업체로 자리잡았다. 게임 불모지였던 한국이 온라인게임 성지가 된 데에 김 이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해외에서도 입지를 키웠다.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 대만 시장에서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며 많은 가입자를 확보했고, 넥슨은 2011년 12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한국의 디즈니’ 꿈꿔온 김정주

김 이사는 넥슨을 통한 게임 서비스 외에 투자활동에도 주력해왔다. 2005년 글로벌 투자회사이자 넥슨의 지주사인 NXC를 설립하며 인수합병(M&A) 등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지난해 7월 이재교 대표에게 수장 자리를 넘기기 전까지 15년간 NXC를 이끌며 넥슨 컴퍼니의 성장을 도왔다.

올해 1월에도 세계적인 영화감독 루소 형제와 마이크 라로카가 설립한 AGBO 스튜디오에 약 6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며 IP 확장을 꾀했다. 영화와 TV 등 자체 IP를 통한 영상 사업 추진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었다.

2020년에는 미국의 완구회사 해즈브로와 일본의 게임사 반다이남코, 코나미 등에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다. 다양한 플랫폼과 게임 IP를 결합해 ‘원소스멀티유즈’를 실현한다는 목표다.

이같은 IP 확장 사업에는 김 이사의 의사가 크게 반영됐다. 지난해 7월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문가인 닉 반 다이크를 수석 부사장 겸 최고 전략책임자(CSO)로 선임하며 글로벌 진출 확장에 힘을 더했다.

그는 생전에 성장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해외 기업 인수를 꼽았다. 김 이사의 부재에도 넥슨은 그의 의지를 이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행보를 계속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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