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외환보유액 60% 이상 묶여…1년 내 1400억 달러 채무 만기 예정
러시아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 부도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들이 러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연이어 강등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정부는 서방의 경제제재가 계속될 경우 국채 상환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성명을 내놨다.
한국의 대(對) 러시아 신용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크지 않지만, 디폴트 선언에 따라 익스포저 규모가 큰 국가들이 영향을 받을 경우 우리나라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재무부는 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러시아 비거주자에 대한 국채 상환은 서방이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계속될 경우 국채 상환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앞서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3일 이후 사흘 사이에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10계단이나 강등해 'Ca' 등급으로 낮췄다. Ca 등급은 '투자 부적격 등급' 중에서도 최하 수준의 등급이다. 무디스 평가 체계상 Ca 등급 밑으로는 통상 파산 상태를 의미하는 'C' 등급만 있다.
무디스는 러시아의 디폴트 위험이 증가했다면서 "러시아가 채무를 상환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를 둘러싸고 심각한 우려가 나와 이러한 강등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다른 국제신평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도 최근 러시아 국가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정크)으로 낮췄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정민현 KIEP 부연구위원은 2일 공개한 ‘우크라이나 위기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업데이트’를 통해 "러시아의 스위프트(SWIFT) 배제, 자산 운용 경직성 심화로 충분한 재정 여력과 외환보유고에도 불구하고 디폴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달 7억 달러 규모의 국채가 만기를 맞지만, 전방위적인 금융제재로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KIEP에 따르면, 러시아 외환보유액의 60% 이상인 약 4000억 달러가 금융제재에 동참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해외 금융기관에 예치돼 있다. 1년 안에 만기 예정인 국채, 회사채 미상환 채무 규모는 약 1400억 달러 수준이다.
러시아 디폴트가 현실화하더라도 당장 한국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타격은 미미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의 대 러시아 익스포저는 작년 말 14억7000만 달러로 전체 대외 익스포저의 0.4% 수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올해 2월에는 11억7000만 달러로 감소했다.
다만, 대 러시아 익스포저가 큰 국가들이 디폴트로 인한 충격을 받을 경우엔 연쇄 효과로 인해 우리나라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주요국 중 지난해 9월 말 기준 대러시아 익스포저는 프랑스가 236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이탈리아(232억 달러), 오스트리아(171억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정민현 부연구위원은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시장에서 이미 러시아의 디폴트 위험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고, 어느 정도의 충격이 선(先)반영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디폴트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에 익스포저가 큰 국가들을 중심으로 부정적인 충격이 글로벌 자본 시장에 파급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직접적인 노출도는 낮지만, 디폴트에 따른 연쇄적인 파급 효과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