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지난해 가스 수입의 45% 러시아산이 차지
러시아 화석연료 중독서 벗어나야 목소리 커져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가속화 전망
미국이 결국 극약처방으로 꼽혀왔던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석탄, 관련제품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장 미국 단독으로 금수 조치를 내놓긴 했지만, 대러 제재에 공조해온 유럽연합(EU)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대한 중독을 끝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8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을 통해 “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일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은 이날 즉각 발효됐다. 같은 날 영국도 미국과 호흡을 맞춰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그간 서방국가는 대러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악화 우려에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제재를 주저해왔다.
하지만 러시아 공격이 장기화하고 민간인 피해가 커지자 미국이 독자적으로 ‘원유 금수’라는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등 에너지 의존도 높은 유럽은 이번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연말까지 3분의 2가량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CNBC에 따르면 지난해 EU의 총 천연가스 수입량의 45%가 러시아산이었다. 반면 지난해 미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원유 및 정제 석유 제품은 전체 관련 수입품의 8% 정도다.
당장 유럽이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을 전면 차단하거나 대폭 줄이는데 연간 2000억 유로(약 269조 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프란스 팀머만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전날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에 EU 회원국들이 금기시해야 하는 선택지는 없다”면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단기적으로 더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도 회원국의 선택에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즉 비(非)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증가와 태양, 풍력, 원자력 발전 확대 추진을 모두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유럽 내에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 더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개인이나 정부 정책 차원에서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에너지 관련 사업 활성화에 대한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당장 유럽이 실내 온도를 섭씨 1도만 조절해도 러시아 가스 수요가 7% 줄어들 수 있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적한다. 가스보일러를 전기로 작동하는 열펌프 보일러로 교체하면 에너지 효율이 3배 높아진다.
또한 유럽 주택 단열을 정책적으로 개선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전기차 보급을 적극적으로 촉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 내 전기차 판매는 2030년까지 4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 정책 당국이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전기차 판매를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강력한 인센티브 덕에 전기차가 전체 신차 판매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결과 석유 수요가 2011년 대비 10%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