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동네 북’ 된 여가부, 어쩌다가

입력 2022-03-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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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한 가운데, 여가부 현판 옆에 있는 홍보용 모니터 전원이 꺼져 있다. (연합뉴스)

선생님 페미(페미니스트)에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글이다. 자신을 남자 중학교 선생님이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제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평등을 배우는 교육의 현장에서 마저 ‘페미니즘=남혐(남성 혐오)’으로 인식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는 소감도 적었다.

정치권은 이런 젠더 갈등을 부추겼다. 그 중심엔 여성가족부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여가부를 해체 하겠다’고 약속하며 이대남(20대 남자)의 폭발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0.73%포인트(p) 차이로 이길 수 있었던 핵심 선거 전략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성 평등과 청소년ㆍ가족 정책을 만드는 여가부는 어쩌다가 ‘동네 북’ 신세가 된 걸까.

여성부→여가부→여성부→여가부…출범 후 20년 변천사

2001년 김대중 정부는 고용노동부의 여성 주거와 고용, 보건복지부의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보호 등의 기능을 합쳐 여성부를 신설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복지부의 가족 정책 기능까지 더해졌다. 여성가족부란 부처명은 이때 생긴 것이다.

여가부의 첫 번째 위기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때였다. 여가부 폐지 공약에 따라 복지부에 흡수될 위기에 처했지만 여성계 반발로 조직은 유지하되, 가족ㆍ보육 정책은 복지부로 이관했다. 하지만 2년 뒤 그 기능을 다시 가져오면서 확대 개편됐고, 현재까지 그 기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여가부는 이런 조직변천사를 겪으며 현재 성 평등과 청년·가족 문제에 대한 부처 간 조정기능과 정책 집행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정옥 전 장관은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 것에 대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뉴시스)

윤미향ㆍ박원순 등 젠더 이슈에 제 역할 못해

현 정부 들어 여가부 폐지 목소리가 더 커진 가장 큰 이유는 주요 젠더 이슈에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지난해 윤미향 의원이 이사장을 맡았던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의혹을 진상 조사하겠다며 국회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때 끝내 응하지 않았다.

안희정ㆍ오거돈ㆍ고 박원순 등 여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들의 권력형 성범죄가 잇따랐을 때도 피해 여성을 보호하기보다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정옥 전 장관은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 것에 대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해 사실상 경질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남성은 물론 여성들조차 여가부를 ‘무슨 조직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실이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2.3%가 ‘여가부가 잘못 운영되고 있다’고 답했는데, 남성(71.4%)보다 여성(74.3%)의 비판 목소리가 높았다.

“각 부처에 기능 이관하고 대통령이 컨트롤타워 해야”

타 부처와의 기능 중첩도 폐지론에 힘을 싣는다. 여성의 취업, 경력 단절 등은 고용노동부, 아동 양육과 돌봄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성범죄 등의 문제는 법무부와 검찰, 경찰이 담당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여성·가족 관련 법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연구’에서 설문(5점 만점)에 참여한 전문가 32명은 ‘여가부의 권한이 제한적이고 위상이 취약하다(4.69점)’, ‘성차별 시정기능이 부재하다(4.63점)’고 답했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가부와 관련된 윤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그중 두 가지는 모두 관련 부처로 다 내려보냈다”라며 “하나 남은 게 성 주류화, 일종의 여성 정책들인데 이건 어떤 특정 부서에서만 담당하면 목소리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대통령 직속으로 또는 총리실 산하에 양성평등위원회 같은 것을 둬서 계도적인 효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도록, 정부가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게 훨씬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여성계 반발이 거세다.(연합뉴스)

법 개정 난항과 여성계 반발에 실제 폐지될지는 미지수

윤 당선인이 여가부 폐지를 밀어붙인다 하더라도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여당이 반수 이상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합의 과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특히 20대 젊은 여성의 표심이 이 후보에게 집결됐다는 점은 ‘통합’을 이뤄내야 하는 윤 당선인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젠더 갈등 문제라는 것이 표심을 완전히 양쪽으로 갈라놓았다”라며 “이대남은 지금 당선자 쪽으로 표를 던졌고, 이대녀는 이재명 쪽으로 표를 던지고 이런 갈등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무조건 여가부를 폐지하겠다 할 것 같으면 그 갈등 구조를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계 반발도 거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논평을 통해 “선거 기간 국민의힘과 당선인은 혐오선동, 젠더 갈등이라는 퇴행적이고 허구적인 프레임을 선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며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높은 정권 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1%도 안 되는 아주 근소한 표 차로 제20대 대통령을 선출한 민심의 의미를 잘 헤아리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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