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제약사는 화학합성 의약품에 기반을 두고 오랜 세월 사업을 이어온 기업들이다. 주로 글로벌 제약사의 제품을 국내에 들여오거나, 제네릭 의약품을 제조해 활발한 영업·마케팅을 펼치면서 몸집을 불려왔다. 도입 상품과 제네릭 제품이 어우러진 포트폴리오는 긴 시간 동안 안정적인 매출과 적당한 수익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고령화와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 증대로 제약·바이오산업이 주목받으면서 판도는 급변했다. 신약 개발은 이 산업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떠오르고, 기술력을 가진 바이오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바이오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20일 이투데이가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과 발생 이후 2021년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매출 톱10 순위를 비교한 결과 상당한 순위변동이 나타났다.
2019년엔 유한양행이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가운데 전통 제약사들이 고루 포진했다. 셀트리온이 3위에 올라있긴 하지만, 한미약품과 대웅제약, 종근당이 바짝 뒤쫓고 있었고 제일약품과 동아에스티, 보령제약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팬데믹은 바이오기업들에 더 큰 기회로 작용했다. 2021년 셀트리온은 순식간에 2조 원에 육박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며 1위에 올랐고, 삼성바이오로직스도 1조5000억 원을 넘겼다. 2019년 매출 2000억 원에도 못 미치던 SK바이오사이언스는 1조 클럽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전통 제약사도 매출 확대에 성공했지만, 성장률은 바이오기업에 미치지 못했다. 매출 순위에서 바이오기업에 밀려났고,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바이오기업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34~51%에 달하는 데 비해 전통 제약사들의 수익성은 뒷걸음질 치거나 적자로 돌아섰다.
대형 제약사들도 변화의 바람을 읽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R&D 투자를 과감히 늘리고 오픈 이노베이션 등으로 유망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면서 뚝심 있게 신약 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상품 도매상'이란 꼬리표를 뗀 유한양행은 '렉라자'로 글로벌 블록버스터의 탄생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며, 대규모 기술수출의 선봉장이었던 한미약품은 올해 '롤론티스'와 '포지오티닙'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여부가 판가름난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자 흐름은 중견·중소제약사로 이어졌다. 저마다 특색 있는 신약 개발 전략을 수립해 미래 먹거리를 찾으면서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전무는 "그동안 전통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대해 '하이 리스크'란 부담감만 안고 있었지만, 성공사례의 등장으로 '하이 리턴'의 기대감이 생기면서 업계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미래 생존 방식을 고민하던 중견·중소사들도 이런 흐름에 편승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