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엔화값, 달러당 7년만의 최저...얼마나 더 떨어질까

입력 2022-03-2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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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통화들. 출처 :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엔화 가치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엔화는 지정학적 리스크나 금융위기 등 위기 시에 달러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꼽혀왔지만,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간 금융정책 괴리가 확대하면서 엔화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영향이다. 엔화의 추락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글로벌 투자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은행이 당긴 ‘엔저’ 방아쇠

▲달러.엔 환율 추이. 출처: 블룸버그
28일 일본은행(BoJ)은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0.25%의 지정 수익률로 10년 만기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연속 지정가 오퍼레이션(공개시장조작)’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BoJ가 연속 지정가 오퍼레이션을 실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채가 시장에서 팔려 가격이 하락하면 금리는 올라간다.

이에 도쿄외환시장에서는 미국과 일본 간 금리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에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움직임이 가팔라졌다. 이 여파로 엔화 가치는 달러당 한때 2.4% 내린 125.09엔으로 2015년 8월 이후 약 7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엔화 가치는 올 들어 8% 하락해 주요 통화 중 하락 폭이 가장 큰다. 엔화는 유로에 대해서도 한때 유로당 137엔대까지 하락해 약 6년 반만의 최저치를 찍었고, 파운드에 대해서는 파운드당 164엔대로 마찬가지로 약 6년 만의 최저치를 다시 썼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 모두 금리 인상을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ECB는 양적 완화 축소를 서두르는 등 인플레이션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장의 관심은 강달러보다 엔저에 쏠리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긴축에 따라 장기금리가 더 올라 미·일 간 금리 차가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 당분간 달러화를 사고 엔화를 팔려는 움직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삭소뱅크의 FX전략책임자 존 하디는 “세계 금리가 계속 상승하면서 BoJ가 채권시장에 대한 무제한 지원을 약속하는 한 엔저 압력은 계속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달러·엔의 다음 심리적 지지선을 125.86엔으로 봤다.

◇엔저 부채질 하는 3가지 요인

3월 초만 해도 달러·엔 환율은 114엔대였다. 그러나 약 1개월 만에 11엔이나 올랐다. 달러·엔이 한 달 내내 상승 곡선을 그린 건 2016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시장의 대다수 예상에 반해 승리, 대규모 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 등에 힘입어 달러·엔은 한 달 만에 약 10엔 상승을 시현했다.

이번은 다르다. 지난 1년간 달러·엔은 완만하게 상승세가 이어진 데다 최근 2개월간은 115엔대에서 안정됐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달러·엔 상승에 불이 붙은 건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 양쪽 요인이 동시에 영향을 준 까닭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출처 : 로이터연합뉴스
우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기어 체인지’를 꼽을 수 있다. 지난 6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드러난 멤버들의 기준금리 전망(점도표)에서는 2022년 말 예상 중앙값이 1.875%(7회 인상)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중앙값으로, 올해 안에 이를 웃도는 금리 인상을 필요로 하는 멤버가 16명 중 7명에 이른다는 건 서프라이즈였다.

그 다음 주인 21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콘퍼런스에서 “고용시장은 매우 강력하고, 인플레이션은 너무 높다”고 말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50Bps 이상의 금리 인상을 여러 차례 실시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연방기금(FF)금리선물에는 이미 올해 매 FOMC에서의 금리 인상에 더해, 그중 2회는 50Bps의 금리 인상 폭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반영됐다. 시장이 FOMC 멤버들의 변화를 느끼고 기준금리 전망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미국 장기 금리와 달러가 상승한 것이다.

엔저의 두 번째 요인은, 일본의 경상수지 악화를 들 수 있다. 일본 재무성이 8일 발표한 1월 경상수지는 1조1887억 엔(약 11조7366억 원) 적자였다. 경상수지의 적자 전락은 단적으로 말하면, 해외에서의 수입 초과에서 해외로의 지급 초과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이 때문에 ‘외화 매도·엔 매수’보다는 ‘외화 매수· 엔 매도’ 압력 쪽이 더 커진다. 외환시장에서는 최근 유가 상승에 따른 무역적자 확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만큼 경상수지가 12월에 이어 1월에도 적자를 내고, 아울러 적자액도 크게 증가한 것도 주목을 받았다.

세 번째는 테크니컬 요인이다. 그동안 달러·엔의 상승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포인트를 모두 깼기 때문에 엔화 가치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 실수요의 엔화 매도 헤지 등을 포함해 다양한 달러·엔 매수 수요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2일에 집계해 25일에 발표된 시카고통화선물시장에서의 투기 세력들의 엔화 보유고를 보면 온라인에서 7만8482건의 매도가 일어났다. 이는 8일 시점의 5만5856건에서 약 2만2000건 증가한 것이다. 일부 투기 세력이 엔화를 팔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같은 기간 달러 대비 엔화 약세 진행 속도에 비하면 포지션 변화는 작다는 평가다. 실제로는 실수요의 엔 매도·달러 매수도 시장에 상당 수준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엔저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과자식품을 고르고 있다. 뉴시스
29일 오전 원·엔 환율은 100엔당 987.03원을 기록 중이다. 원·엔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내려간 건 2018년 12월 14일(995.9원) 이후 3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원화에 대한 엔화 약세는 한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우선 엔저의 가장 부정적인 효과는 일본 상품에 대한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 감소→생산 감소’라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출 비중이 큰 우리 경제의 성장이 둔화하고 무역수지가 악화할 수 있다.

다만, 대외 수입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 부문에서는 엔저가 대일 수입 부담을 줄여 기업 채산성을 개선시키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또 엔화 표시 외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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