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 국제경제부장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화약고가 바로 동아시아에 있다. 대만이다. 우크라이나에서처럼 전쟁이 터진 뒤에 후회하지 말고 중국과 대만은 물론 전 세계가 긴장의 불씨를 제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군사적 실패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만의 국가정보원 격인 국가안전국의 천민퉁 국장은 지난달 말 “차이잉원 총통의 임기 동안에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차이 총통의 임기는 2024년까지다. 천 국장은 “중국은 쉽게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우크라이나에서 얻었다”며 “중국은 러시아의 결점을 연구하고 인민해방군을 개선할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가 지난달 국제관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중국이 내년 대만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할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약 71%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럴 것이라고 예상한 답변은 7%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경시할 수 없는 이유가 충분하다. 근본적으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한 것이 중국으로 하여금 대만과의 통일을 위한 전쟁을 연기할 이유는 돼도 이를 포기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중국 공산당이 대만과의 통일이라는 최우선순위를 놓고 언제까지 침공을 자제할지 매우 불확실하다. 올가을 20차 당대회를 통해 3연임을 노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 3차 역사결의를 통해 자신을 마오쩌둥과 같은 반열에 올렸다. 그러나 이런 자화자찬에도 시 주석이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이나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과 견주기에는 그 업적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심지어 시 주석은 고속성장으로 중국을 주요 2개국(G2)으로 끌어올린 장쩌민과 후진타오에 비해서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10% 이상의 고성장을 누리던 중국 경제는 경기둔화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고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져 ‘공동부유’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이 자신의 장기집권 당위성을 피력하려면 공산당의 오랜 숙원이었던 대만과의 통일밖에 없다. 장쩌민이 홍콩 반환으로 위상을 굳힌 것을 떠올리면 된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러시아의 한 인권운동가는 연방보안국(FSB) 기밀 보고서를 입수했다며 시진핑이 올가을 대만을 침공하려 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마음을 돌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 공격 의지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설령 친중국파로 분류되는 국민당이 정권을 탈환하더라도 중국과의 평화통일을 추구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일이 당장 벌어지지 않더라도 또는 그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하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와 같은 비극이 재연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려면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무 뻔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대만 자신이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대만 정부는 현재 4개월의 의무복무(군사훈련)만 있는 반모병제에서 벗어나 훈련 기간을 1년으로 늘리는 징병제 부활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위협이 큰데 과거 징병제를 폐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만 정치인들의 현실 인식이 얼마나 안이했는지를 보여준다.
외교 방면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실 모호성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대만 방어 전략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안보에서는 모호성을 버리고 대신 외교적으로 이를 취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에 침공 명분을 주지 않는 것이다. 대만 독립을 절대 추구하지도 않지만, 친중국으로 치우치지도 않을 것이라는 자세를 내세우면서 긴장 고조를 최대한 피하자는 전략이다.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