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추진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반발하는 검찰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전국 평검사들에 이어 부장검사들도 반대 의견에 힘을 보태는 모습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 대한 원인 분석과 자기반성은 빠져 있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전국 평검사 회의’에 참석한 검사들은 20일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날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회의 내용을 전했다. 회의 안건은 ‘검수완박 법안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이지만 제한을 두지 않고 여러 의견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참석 예상 인원은 150명이었으나 207명의 검사들이 모였다.
회의에 참석한 김진혁 대전지검 검사와 윤경 의정부 지검 검사, 김가람 서울북부지검 검사, 최형규 대전지검 검사, 임진철 서울중앙지검 검사, 남소정 울산지검 검사는 브리핑에서 회의 결과를 전하며 입장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검수완박’ 법안은 검사의 두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어 ‘범죄는 만연하되, 범죄자는 없는 나라’를 만들고 힘없는 국민에게는 스스로 권익을 구제할 방법을 막아 결국 범죄자들에게는 면죄부를, 피해자에게는 고통을 가중시키는 ‘범죄 방치법’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평검사 대표들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외부적 통제장치와 내부적 견제장치인 '평검사 대표회의' 등을 제시했다.
다만, 국민들 사이에서 검찰개혁 요구 여론이 거세지고 정치권이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명분에 대한 분석은 논의되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특히, 공정성‧중립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과거 검찰 수사 사례는 토론 테이블 위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김진혁 검사는 브리핑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특정 사례에 대한) 논의에 한계가 있었다”며 “(회의에 참석한 검사들 중) 최고로 높은 기수가 (사법연수원) 37기이고 이들은 검찰에 입사한 지 15년이 된 분들인데 과거에 (검찰이) 비판을 받았던 공정성‧중립성이 문제된 사건 수사에 실제로 참여하거나 관여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의에서는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저희가 직접 나서서 ‘겪지 않은 일에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나’라는 취재진 질문에 김 검사는 “검사들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의 사건에 대해 기록을 직접 보지 않기 때문에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해명했다.
회의에서는 검수완박이라는 위기 상황을 초래한 검찰 수뇌부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긴 했으나 안건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대검찰청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수완박으로 검찰 보완수사가 폐지될 경우 우려점 등을 설명했다. 대검 형사부는 과거 특정 사건 사례를 제시했다. 16개월 입양아를 살인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에 대해 “양모의 아동학대치사죄로 구속 송치된 사건에 대해 검찰은 피의자 등 조사, 의료자문위원 감정, 대검 통합심리분석, 휴대폰 디지털포렌식 등을 통하여 양부의 아동학대혐의를 추가 인지하고, 감정결과 췌장절단 등 복부손상을 밝혀 기소 직후 살인죄로 공소장 변경함으로써 양모는 항소심에서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검수완박)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개정안에 따르면 구속 기간 10일 내에 추가 수사 없이 경찰이 보낸 기록만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아동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전문가 감정, 대검 통합심리분석, 휴대폰 디지털포렌식 등 추가 수사를 할 수 없어 양모를 ‘살인죄’로 처벌받게 할 수 없게 되고, 양부의 학대 범행도 추가 인지할 수 없어 정인이 같은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힐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앞서 전국 고검장‧지검장‧평검사 회의를 연달아 연 바 있다. 전국 부장검사들도 이날 모여 검수완박 저지에 힘을 보탠다. 부장검사는 검찰 중간 간부급으로 사법연수원 31~32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각급 청 대표 부장검사 50여 명은 이날 서울중앙지검 2층 대강당에서 ‘전국부장검사 대표회의’를 열고 검수완박이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과 향후 대응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