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문방구를 방문하면 몇 번이고 들어다 놨다 했던 그것. 이것만 차면 나도 요술 공주도 마법 소녀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었는데요.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게 문방구 문 앞에 걸어두셨던 주인아주머니의 야속함에 결국 무릎 꿇고 떼를 쓰고 말았죠. 색도 크기도 어린 눈에 그저 화려함 자체였던 ‘공주놀이 장난감’입니다.
반짝반짝 보석(물론 플라스틱)이 가득 박힌 왕관, 귀걸이, 목걸이 세트가 기본인데요. 여기에 팔찌, 반지 뿐 아니라 요술봉까지 함께 한다면 공주 중의 공주로 등극합니다.
공주로 변신했던 그 시절 그 모습은 당당한 포즈로 앨범 한쪽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데요. 흑역사(?)로 기억됐던 그 장면이 지금 재현되고 있다는 것 아시나요?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의 ‘공주세트’가 어른이 된 현실에서 만났죠.
첫 시작은 배우 한소희 생일파티 사진이었습니다. 하늘하늘한 쉬폰 원피스를 입고 꽃을 든 채 수줍게 웃고 있는 한소희의 모습. 그저 예뻤던 그녀의 귀와 목이 심하게 반짝거렸는데요. 주먹만 한 펜던트가 ‘고가의 주얼리’가 아니냐는 추측들이 나왔죠. 그런데 네티즌들이 찾고 찾았던 그 주얼리의 가격은 단돈 1000원이었습니다. ‘블링블링~ 프린세스 목걸이&귀걸이 세트’라는 이름으로 다이소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이었는데요. 그저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 갖고 싶었던 정도의 상품. 다이소에 방문했더라도 무심히 지나쳤을 그 물건이었죠.
좀 많이 큰 듯한 펜던트도 여기선 인정. 생일파티 인증샷의 한 컷으로는 전혀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주인공’이 착용할 만한 액세서리였던 거죠. 저렴하면서도 어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함께 합니다. 1000원이 행복이란 정말 이런 것일까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면서도 평소라면 손도 못 댔을 것 같은 디자인도 ‘생일이니까’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납득 완료. 함께하는 친구, 애인과 ‘찐 웃음’의 추억과 이를 모두 담은 사진 한 장이 완성됩니다.
이후에 소녀시대 태연, (여자)아이들 미연의 착용 샷이 공개되며 ‘공주세트’ 인증샷은 생일 주인공이라면 머리, 목, 귀에 으레 착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필수품으로 등극했는데요. 왕관과 반지까지 추가된 ‘프린세스 미용놀이(3000원)’도 불티나게 팔렸죠.
출시 의도(?)와 다르게 그간 인기였던 다이소 미니 세탁기처럼 이 ‘공주세트’도 어른들의 ‘잇템’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이소에는 “‘공주세트’ 있나요?”라는 문의가 끊이질 않았는데요. 이미 매장마다 해당 제품은 품절된 상태입니다. 다이소 관계자는 “매장별로 재고가 부족한 상황으로, 다음 달 중 추가 입고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죠.
이 ‘공주세트’와 함께 빠질 수 없는 ‘인싸 포즈’도 등장했는데요. 바로 ‘갸루피스’입니다.
9일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아이브 멤버 안유진이 ‘요즘 브이’라며 출연진들에게 ‘갸루피스’를 선보였는데요. 사진 찍을 때 흔한 포즈인 브이를 팔을 쭉 펴고 손바닥을 뒤집은 채 취하는 겁니다. ‘갸루피스’는 ‘갸루(Girl의 일본식 발음)’와 브이 사인을 뜻하는 ‘피스’의 합성어인데요.
과거 일본의 갸루족(까무잡잡한 피부에 진한 눈화장이 특징)이 사진을 찍을 때 자주 사용했던 포즈라고 합니다. K팝 아이돌로 활동 중인 일본인 멤버들인 트와이스 사나, 빌리 츠키, 아이브 레이 등이 셀카에서 사용하면서 알려졌다고 하죠.
왠지 모르게 ‘힙’한 것 같은 이 포즈. 팔을 앞으로 뻗어 뭔가 얼굴이 작아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흔하지 않은 브이, 유행에 편승할 수 있는 이 ‘새 포즈’에 너도나도 합류했는데요.
현재 유명 아이돌들이 ‘갸루피스’ 포즈를 취한 사진을 SNS에 게재하면서 ‘갸루피스 해시태그’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 ‘갸루피스’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하는데요. 일본에서 유행했던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한국 정서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죠.
시작과 관련한 여러 말들이 나오는 ‘갸루피스’지만, 다양한 브이 포즈의 ‘요즘 버전’이라는 건 사실인데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브이’ 포즈는 정말 다양하게 변형되며 사진첩 곳곳에 자리하는 중입니다. 평범한 브이부터 방향만 뒤바꾼 브이, 또 얼굴을 가리는 브이부터 양손으로 브이를 그린 뒤 머리 위로 올리는 포즈까지 정말 발전사가 가득하죠.
현재의 ‘갸루피스’처럼 그 시절 그때 유행한 포즈들이죠. 다양한 브이뿐 아니라 한 손으로 코 아랫부분을 모두 가리는 포즈, 하트를 반으로 갈라 양 볼에 붙이는 포즈, K 하트로 불리는 작은 하트 포즈 등 모두 한 번씩은 해봤던 익숙한 동작인데요.
더 어릴 적엔 태권도 도복을 입고 다리를 하늘 끝까지 뻗은 동작도, 피아노 앞에 앉아 세상 새초롬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치는 모습도 다 그 시절을 지나온 이들이라면 ‘꼭’ 있는 사진 포즈죠. 졸업앨범 속에서도 당시 카메라 앞에서 취한 인기 포즈와 인기 소품을 만나볼 수 있고요. 흑역사의 상자라 불리던 미니홈피가 최근 재개장하면서, ‘그때 그랬지’의 감성포즈가 회자되기도 하는데요.
그 모든 사진마다 “이거 나도 이랬어”, “이런 사진 나도 있어”라고 맞장구칠 수 있는 건 다 같은 그때를 지나왔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찍는 모든 사진도 시간이 지나면 “나도 이때 이 ‘갸루피스’ 했었어”, “나도 이 다이소 공주놀이 인증샷 있는데”라며 이때를 추억할 하나의 기록이 되지 않을까요?
미래의 내가 민망해질 수도 있는, 하지만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는 그 ‘한 컷’. 이렇게 또 저장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