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부족·인플레에 각국 정부 시장 보호 나서
WFP “현재 38개국 4500만 명이 기근 일보 직전”
보호주의가 오히려 사태 더 악화 지적도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파괴된 자국 경제를 보호하고자 해바라기유와 밀, 귀리, 소 수출을 제한했다. 우크라이나와 함께 세계 곡물 생산을 책임지는 러시아도 비료와 설탕, 곡물을 다른 국가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 여파에 우크라이나로부터 밀 수입을 의존하던 인근 몰도바와 세르비아, 헝가리도 밀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또 세계 팜유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인도네시아는 팜유 수출을 중단했고, 연간 물가상승률이 61.14%에 달하는 터키는 버터와 쇠고기, 양고기, 염소, 옥수수, 식물성 기름 수출을 멈췄다.
이처럼 공급 부족과 인플레이션 속에 자국 시장 보호에 필사적인 각국 정부가 국경에서 수출을 막는 새로운 장벽을 세우면서 식량보호주의 물결을 촉발했다.
전문가들은 보호무역주의 물결이 각국 정부가 완화하려는 문제를 더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스위스 세인트갤런대의 사이먼 에버넷 국제무역학 교수는 “올해 초부터 각국은 식품과 비료 총 47개에 대한 수출을 규제했고 이 중 43개는 우크라이나 전쟁 후 시행됐다”며 “전쟁 주역인 러시아가 수출을 억제하면서 몰도바와 세르비아, 헝가리가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결국 식량안보 문제에 처한 레바논과 알제리, 이집트도 수출 금지령을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러한 역학관계는 여전히 진행 중으로, 향후 몇 달간 더 악화할 수 있다”며 “이미 유럽에선 주요 작물의 제한된 공급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은 “현재 38개국 4500만 명이 기근 일보 직전”이라며 “시리아처럼 식량 가격이 100~200% 오르는 국가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산 밀과 곡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은 폭동과 대량 이주 위험도 커졌다.
분쟁지역 지원단체인 플랜트포피스의 아메르 알후세인 경제고문은 “기근이 임박했다는 많은 경고에 직면한 레바논의 경우 식량안보가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2019년 폭동 때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비즐리 사무총장은 “이번 가을이 전쟁 여파가 MENA를 본격적으로 강타할 시점”이라며 “위기가 대량 이주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의 타우피크 라힘 선임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상승과 공급망 정체 상황에서 더 넓은 지역이 이번 여름 전례 없는 경제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경제적 불만이 고조되면서 새로운 정치적 판도라 상자가 열릴 것이고 각국 정부는 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