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임금 인상→물가 추가 상승' 우려…인플레 기대심리 관리 필요
4월 소비자물가가 치솟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상황에서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임금발(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高)물가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임금상승 압력이 높아지면 '물가 상승→임금 인상→물가 추가 상승'의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4일(현지시간) 현재 0.25~0.5%인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인상했다. 이는 2000년 5월 이후 22년 만의 최대 인상 폭이다.
연준의 '빅스텝'은 현재 최악의 물가 상승세를 막기 위한 강도 높은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8.5% 급등하면서 1981년 12월 이후 40여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미국의 가파른 물가 상승세에는 근로자 임금 인상으로 인한 '임금·물가 스파이럴(악순환)' 현상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은 고용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하면서 구인난이 심화했고, 기업은 인력을 구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임금을 인상했다. 이러한 임금 인상분이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에도 반영되면서 물가가 추가로 상승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장 물가를 떨어뜨릴 만한 하방 요인이 없어 당분간은 상승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물가 국면이 장기화하면, 근로자들은 '월급 빼고 다 올랐다'라는 생각에 고용주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게 된다. 기업은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고 이는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에 반영되면서 물가가 더 오르게 되는 원리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최근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노동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물가상승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지는 '이차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앞으로 높은 물가 상승세와 고용 회복이 지속될 경우에는 올해 하반기 이후 임금상승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경우에 따라서는 물가상승 → 임금상승 → 물가 추가상승의 악순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 경제 주체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고용시장에서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임금 협상의 준거 지표로 활용된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소비자가 예상하는 향후 1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의미한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근로자들이 향후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임금 인상 압력을 높이는 것이다. 한은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4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1%로 2013년 4월(3.1%)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대 인플레이션을 적정 수준에서 통제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과감히 물가 잡기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남미 국가의 경우 물가·임금 간 악순환에 빠져 경제 위기가 더욱 심화됐다"며 "원유 등 원자잿값은 나중에 떨어질 수 있지만, 임금 상승분은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커서 향후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선 한국은행이 물가 상승을 낮추겠다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신뢰도를 줘야 한다"며 "금리를 더 높여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것을 국민들이 믿게 만들면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춰 임금·물가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