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 시총, 고점 대비 3분의 1도 못 미쳐
올해에만 업계 전체 1000억 달러 콘텐츠 투자 예상돼
“미국 국방부 예산 맞먹어, 지속 가능하지 않아”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11년 만의 첫 가입자 감소 소식에 회사는 물론 업계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전날 804억 달러(약 102조 원)를 기록했다. 최근 고점인 지난해 11월 3000억 달러에 비교하면서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지난달 19일 넷플릭스는 1분기 가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20만 명 감소했다고 밝혔다. 11년 만의 첫 감소세였다. 가입자 수가 점차 증가해 5억 명에 이를 것이라며 실적 발표 한 달 전 내놓은 장밋빛 전망은 곧바로 무색해졌다. 여기에 오는 2분기에도 전체 고객의 1%에 해당하는 200만 명의 가입자가 추가로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치를 내놓으면서 시장의 우려를 키웠다.
지난 10년간 할리우드를 비롯한 글로벌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시장을 뒤흔들었던 넷플릭스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리자 우려는 업계 전반으로 퍼졌다. 너나 할 것 없이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들며 시장 경쟁이 한층 격화한 상황에서 가입자 감소 현상이 넷플릭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넷플릭스는 10년간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거듭했다. 사업 초기 다른 제작자들이 만든 기존 영화와 TV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다 2012년부터는 자체 콘텐츠 개발에 착수했다.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간 일주일 간격으로 에피소드를 공개하던 기존의 미디어 업계 방식에서 탈피해 유료 가입자에게 한 번에 시즌 모든 에피소드를 공개해 큰 호응을 받았다. 공격적인 콘텐츠 투자는 성장으로 이어졌다.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 수는 10년간 750% 폭증해 190개국에 약 2억2200만 명을 확보했다. 이에 힘입어 회사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며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넷플릭스의 놀라운 성공은 극장가 중심이었던 할리우드 영화 시장을 흔든 것은 물론 디즈니와 HBO, NBC유니버설, 아마존 등 기존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업계 대기업들의 잇따른 스트리밍 시장 진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미디어·콘텐츠 대기업은 물론 아마존과 같은 IT 대기업의 진출로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경쟁은 갈수록 격화했지만, 시장 전망에 대한 낙관론은 여전히 대세였다. 글로벌 시장에 서비스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최대 10억 가구가 있다는 가정이 이 같은 성장 낙관론의 토대였다.
하지만 이번 ‘넷플릭스 쇼크’는 스트리밍 산업 낙관론에 일대 전환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전문가들은 실제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 규모가 낙관론의 근거였던 가정보다 훨씬 더 작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넷플릭스가 개척한 스트리밍 사업 모델이 성장 한계에 부딪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넷플릭스 식의 막대한 콘텐츠 개발 투자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 회사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콘텐츠 개발에 쏟아부은 자금은 550억 달러(약 69조8700억 원)에 달한다. 주요국의 완화적 통화정책과 주식시장의 강세장이 콘텐츠 개발 지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을 제공했다. 넷플릭스의 공격적 콘텐츠 투자는 경쟁업체들의 유사 투자로 이어졌다. 업계 2위 아마존은 반지의 제왕 TV 드라마에만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FT에 따르면 미디어 업체들은 올해에만 콘텐츠 투자에 100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넷플릭스는 올해 170억 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긴축 모드로 돌아가면서 이 같은 투자 전략이 성장에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 톰 누난은 “이 같은 투자예상액은 역사적인 수준으로 미국 국방부 예산과 더 어울리는 숫자다”라면서 “단일 회사로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이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스트리밍 시장의 버블이 붕괴하면서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업체들이 콘텐츠 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는 시대가 곧 끝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월가에서도 넷플릭스 경쟁사들에 스트리밍에 대한 지출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직접 스트리밍 사업을 하기보다는 소니처럼 영화와 TV 콘텐츠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