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자가 생기면 일이 꼬인다. 선거 등 큰 이벤트가 없는 비수기라면,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이 인사청문회에 집중된다. 이는 장관직을 제의받은 이들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다. 법적·도덕적 흠이 없어도 비수기를 틈타 ‘청문회 스타’가 되고픈 정치인들의 막무가내 의혹 제기에 난타당한다. 흠이 있는 인물이라면 더 큰 흠을 지닌 ‘총알받이’ 후보자에 묻어갈 기회도 없다. 그 결과는 유능한 인물들의 장관직 고사다. 인재풀은 좁아지고, 장관 공백기는 길어진다. 최악의 경우, 정권 국정철학과 무관한 ‘청문회 통과용’ 장관을 임명해야 할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인 정홍원 전 총리는 2014년 6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려 했지만, 후임으로 지명된 안대희·문창극 후보자가 잇달아 낙마하면서 ‘불멸의 총리’란 별명을 얻었다. 총리직은 ‘기피 대상’으로 전락했다. 296일간 이어진 정 전 총리의 ‘추가 임기’는 당시 여당(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고(故) 이완구 전 총리가 임명되고야 끝났다.
윤석열 정부에선 한덕수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이 20일 예정돼 있다. 사회부총리 기관인 교육부는 김인철 후보자의 자진사퇴로 새 후보자 지명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정호영 후보자가 장관 후보로 지명돼 인사청문회를 마쳤으나, 임명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나마 다음 달에는 지방선거, 하반기 원구성이라는 ‘빅 이벤트’가 있지만, 이후에는 정기국회·국정감사가 개시되는 9월까지 비수기가 이어진다. 총리·장관직 기피에 따른 인사 난맥을 피하려면 적어도 이달 말까진 새 후보자를 지명하고, 다음 달 중순에 인사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이 시기가 윤석열 정부 첫 내각의 안정적 출범을 위한 ‘골든타임’이다.
모든 일에는 적기가 있다. 확실치 않은 최선을 지키려다 최악에 내몰리는 것보단 기회가 있을 때 차선을 찾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