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개월째에 접어들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빠르게 점령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점령 지역 4분의 1을 탈환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습니다. 예상 밖 상황에 러시아 현지 분위기는 어떨까요.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독립 언론 메두자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전쟁 반대 여론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푸틴 축출설’이 돌며 그를 대체할 지도자를 논의하고 있다는데요,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걸까요?
최근 양심선언을 한 러시아 외교관이 대표적입니다. 스위스 제네바 주재 유엔사무국에서 일하던 보리스 본다레프 러시아 외교관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며 23일 전격 사임했습니다.
본다레프는 이날 성명을 내고 “20년간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외교 정책이 바뀌는 걸 봐왔지만, 2월 24일(우크라이나 침공일)만큼 조국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며 사임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날 AP통신에는 “지금 (러시아) 정부가 하는 일을 참을 수 없다”며 “공무원으로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본다레프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와 서방 세계 전체를 상대로 일으킨 ‘전쟁’은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 국민을 상대로 한 가장 심각한 범죄이기도 하다“고 비판했습니다. 러시아는 최근 법을 개정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라 표현하면 처벌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한 러시아 관계자는 메자닌에 “푸틴에 만족하는 엘리트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푸틴)대통령이 러시아에 가해질 제재 규모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한 것에 불만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경제 제재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당장 미국만 해도 그렇습니다. CNBC 등에 따르면 24일(현지시각) 미국 재무부는 러시아의 국채 상환 유예 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해 기존 유예기간이 25일 종료됩니다. 이에 러시아는 당장 다음 달부터 상환 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렇듯 국제 사회의 제재에 따라 러시아는 고립과 불황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푸틴 대통령이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에 집중하니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해외 자산을 압류당한 러시아 엘리트 계층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다만 러시아 최대 온라인 은행 ‘틴코프’의 설립자 올렉 틴코프는 메두자에 “대부분의 러시아 기업인들이 전쟁을 규탄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걸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재를 계속 안고 갈 수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푸틴 대통령이 반대파를 억압하고 있으므로 공개적인 입장 표명은 쉽지 않은 듯합니다.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에선 3월 러시아 내에서 푸틴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23일(현지시각)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정보부장은 현지 매체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와의 인터뷰에서 “3월 초 푸틴 대통령이 캅카스 지역을 방문했을 때 암살 시도가 있었다”며 “완전히 실패한 시도였지만, 두 달 전쯤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푸틴 축출설’이 돌며 후임자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후임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세르게이 소비아닌 모스크바 시장이나 드리트리 메드베데프 안전보장이사회 부위원장 등입니다.
물론 정부 관계자들은 푸틴 대통령을 당장 끌어내리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푸틴이 중병에 걸릴 경우에만 교체될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고 메두자에 말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도 푸틴 대통령은 요지부동입니다. 오히려 전쟁은 자국 경제 문제와 상관없다고 주장하고 있죠.
푸틴 대통령도 쉽게 물러서진 않을 것 같죠. 다만 ‘건강 이상설’에 이어 ‘축출설’까지 나온 가운데 러시아 정재계 물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