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은 가이드라인 제시일 뿐…1심 재판부에서 반드시 따를 필요 없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측 변호인이 대법원의 동양대 강사 휴게실 PC 증거능력 인정에는 사실관계 오인이 있어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허위 인턴 경력 등을 입증하는 파일들이 담긴 '동양대 PC'의 증거 능력을 다시 쟁점화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1부(재판장 마성영 부장판사) 심리로 3일 열린 공판에서 조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작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정보저장매체의 소유·관리자 개념이 중요하다는 가이드라인이 생겼다"며 "정 전 교수에 대한 대법원 판단은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아 사실을 오인했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보저장매체를 임의제출 받을 때는 제출 범위에 대한 피압수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고, 의사가 불명확할 때는 혐의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저장정보만 입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피의자 소유의 정보저장 매체를 제3자가 임의제출할 경우 증거 탐색 과정에 피의자의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봤다. PC와 같은 정보저장매체를 압수수색해서 증거능력을 파악할 때는 소유·관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취지다.
반면, 정 전 교수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올해 1월 전원합의체 판단에 근거해 "검찰이 동양대 PC의 파일을 분석할 당시 정 전 교수가 참여하지 않아 위법한 증거 수집이었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 전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 2부는 "3년 가까이 강사휴게실 내에 (PC를) 보관하면서 이를 공용 PC로 사용하거나 임의처리 등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보면 당시 동양대 측이 포괄적인 관리처분권을 사실상 보유·행사하고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정 전 교수가 동양대 PC의 소유·관리권을 포기해 가지고 있지 않아서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 정 전 교수가 참여하지 못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 전 장관 측 변호인은 동양대 PC의 소유·관리권은 정 전 교수에게 있었지만, 대법원이 이에 대한 사실 관계를 오인했다는 입장이다.
변호인은 "동양대 PC에는 정 전 교수 가족의 주민등록번호·여권번호 등이 저장돼 있어 정황상 소유·관리권을 포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랬다면 중요한 개인정보를 삭제하는 조치를 했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정 전 교수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동양대 PC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변호인은 "대법원과 사건을 달리하는 조 전 장관의 재판에서는 사실관계를 새롭게 규명하는 게 당연하다"며 "전원합의체 판결이 원리를 정한다면 그 후에 각종 판결은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소부(1심 재판부)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구체화하는 판결이 나온다면 사법 발전과 피고인 인권 보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전 교수 판결을 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의 판단에 따라 PC의 소유·관리권을 쟁점으로 삼아 증거능력을 인정했지만, 이는 다양한 판결 중 하나일 뿐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따라서 조 전 장관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동양대 PC에 대한 소유·관리권을 제대로 다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변호인 측의 의견 진술에 대한 생각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검찰이 증인신문을 할 때 동양대 PC에서 확보한 내용을 제시하는 것은 허용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사무분담 변경으로 조 전 장관의 재판부가 변경돼 이날 공판갱신절차도 함께 진행됐다. 검찰이 공소사실 요지를 낭독했고 조 전 장관 측 변호인은 혐의를 전부 부인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조 전 장관과 정 전 교수를 공모 관계로 보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 공판은 17일 진행될 예정이다. 정 전 교수의 자산관리사인 김경록 씨 등이 증인으로 출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