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비트코인은 6개월 만에 반토막이 났고, ‘김치코인’ 루나와 테라는 일주일 새 시가총액 58조 원이 증발했다. 이더리움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솔라나는 네트워크 장애로 만신창이가 됐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좀체 지치지 않는다. 옥석가리기를 통해 ‘봄’을 준비하고 있다.
‘솔루나’(솔+루나)
지난해 상승장에서 이더리움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던 솔라나가 최근 네트워크 장애를 수시로 겪으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리는 오명이다. 5시간 동안의 중단 사태 후 10% 넘게 급락하자 루나 폭락 사태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서 나온 표현이다. 빠른 속도를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네트워크는 출범 5년째인 지금도 불안하다. 2일 오전 1시부터 5시간 동안 새로운 블록에 대한 검증을 진행하지 않자 네트워크 전체가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2일 대규모 트랜잭션을 생성하고 전송하는 방식의 네트워크 공격에 7시간 동안 마비된 이후 한 달 만이다. 이 사건으로 하루 새 솔라나 가격은 10% 넘게 빠졌다. 시가총액 상위권 중 가장 큰 낙폭이었다.
솔라나의 가격이 급격히 오르던 지난해에도 네트워크 중단은 발생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하락장에서 들어서며 투자자들의 태도는 180도 변했다. 투자자들은 속도에 가려진 안정성 문제를 보게 됐다. 투자한 자산에 대해 직시하는 건 하락장에서만 나타난다. 이 과정을 통해 펀더멘털을 확인한다.
2017년 강세장에서 시총 10위권에 있던 코인 중 지금도 남아 있는 코인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XRP), 카르다노(에이다) 등 4개에 불과하다. 당시 3위까지 올랐던 비트코인캐시(BCH)는 25위로 하락했고, 라이트코인은 20위, 아이오타(IOTA) 58위, 대시(DASH) 72위, 넴(XEM) 90위, 비트코인골드(BTG) 98위로 추락했다.
하락장에서 매도 압력을 키우는 것 중 해킹 물량을 꼽을 수 있다. 올해 블록체인 게임 엑시인피니티를 구동하던 로닌 네트워크에서 이더리움 17만3000개가 도난당했다. 당시 6억2500만 달러(약 7560억 원) 규모였는데, 이 물량이 추적 회피용 거래소 토네이도캐시를 통해 시장에 풀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더스캔에 따르면 해커는 지난달 19일 마지막 물량을 정리했다. 보통 해커는 코인보다 현금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세탁이 끝난 직후 처분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보다 앞선 2월엔 웜홀 토큰 브리지에서 이더리움 12만 개(당시 3억2100만 달러)가 탈취당했다. 두 해킹 사건에서 도난당한 후 시장에 풀린 코인이 1조 원에 육박한다.
주요 투자자의 현금화도 하락장을 부추긴다. 제드 맥칼렙 전 리플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올해 들어 약 4억6480만 XRP를 매도했다. 약 1억8829만 달러(약 2335억 원) 수준이다. 맥칼렙이 리플랩스 창립 초기 1년간 일하며 받은 XRP는 90억 개나 된다. 리플의 현재가 500원 수준으로 계산해도 4조5000억 원 규모다. 맥칼렙은 이중 대부분의 XRP를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긴축 기조 강화로 인해 가상자산과 미국 증시는 함께 움직였다. 두 시장 모두 8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다가, 나스닥은 9주 차에 반등에 성공했고, 가상자산은 한 주 더 하락세를 이어갔다. 두 달간 지속 된 동조화(커플링)가 깨졌다.
과거 상승장이던 2017년엔 비트코인은 나스닥의 흐름과 무관한 독자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나스닥과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자 심리상 비트코인이 나스닥을 따라간다는 해석이 나왔는데, 코인 시장의 움직임이 제한된 주요 원인이었다. 이 흐름은 최근 무너지고 있다. 아서 헤이즈 비트멕스 창업자는 “비트코인과 나스닥100의 상관관계가 급격히 낮아졌다”라며 “이는 코인 시장이 바닥에 근접하고 있다는 것 중 하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