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 부추기고, 원자재 의존도 높은 기업에 치명적
14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2.4원 오른 달러당 1286.4원에 거래를 마쳤다. 소폭 오른 모양새지만, 이날 장중 1292.5원까지 상승해 연고점을 넘어섰다.
문제는 최근 환율 급등과 높은 변동성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긴축 경계감이 다시 높아지며 환율이 조만간 1300원을 넘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에너지 가격을 중심으로 고물가가 지속되고 있는 세계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일부 산업과 기업에서 환율 급등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정유업계는 특히 환율에 민감하다. 국내외 결제 수단으로 달러가 일반화된 만큼 환율 폭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환율 상승이 수출엔 유리한 반면, 원유 매입 때 부메랑이 돼 적잖은 부담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모든 항공사가 달러 환율 상승을 악영향으로 분석한다. 당장 항공기 리스 비용을 시작으로 항공유 결제 등이 달러로 이뤄지는 탓이다.
코로나19 엔데믹이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최근 환율 상황은 뚜렷한 걸림돌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환율이 10원 오르면 약 410억 원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한다. 또 제주항공은 환율이 5% 상승하면 185억 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상대적으로 국내 판매보다 해외 판매가 많은 만큼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주요 원·부자재를 수입 단가가 상승하는 만큼 영업이익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현대차와 기아의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의 경우 환율이 5% 상승하면 ‘법인세 차감전 순이익’을 기준으로 702억7000만 원(2022년 1분기)의 손실이 우려된다. 상대적으로 해외 생산설비가 많은 기아는 순이익 감소분이 2544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환율 상승은 단기적으로 매출 증가를 불러오지만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영업이익과 순이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환차손을 포함한 위험회피 목적으로 해외 파생상품 등을 활용해 손실을 상쇄 중”이라고 말했다.
높은 환율은 치솟고 있는 우리나라 물가에 업친 데 덮친 격이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환율변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원·달러 환율이 안정적이었다면 올해 1분기 국내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3.8%가 아닌 3.1%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고 밝혔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기업의 원재료 수입 가격이 오르고,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환율에 따른 우려를 확인할 수 있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지난 달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달러화 강세에 견인돼 큰 폭 상승했는데, 추가적인 물가상승 요인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변동성 확대에 따른 금융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