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본 시장에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플레이션 충격의 여파로 ‘자이언트스텝’ 우려가 커지자 돈줄이 막히면서다. 신용스프레드가 크게 벌어지면서 회사채를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됐고, 인수합병(M&A) 시장에선 조달금리와 인수금융 금리 상승으로 투자가 위축도는 분위기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도 상장 철회가 줄을 잇고 있다.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4일까지 회사채 순발행액(전체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제외한 규모)은 7조7601억 원으로 전년 동기(23조2354억 원) 대비 66.6%(15조4753억 원) 감소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발행된 채권의 전체 순발행액이 87조3602억 원으로 전년 동기(114조4826억 원) 대비 23.7%(27조1224억 원)가 줄어든것과 대비해 회사채 발행액의 감소 폭이 컸다.
긴축 기조에 따라 신용스프레드가 벌어지면서 기업들의 차입 부담이 커진 탓이다. 금투협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신용등급 ‘AA’ 회사채 신용스프레드는 지난 14일 기준 68bp(1bp=0.01%)(3년물 기준)로 집계됐다. 이달 들어 스프레드는 73b까지 치솟으면서 올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회사채 발행을 앞둔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최대 4000억 원 조달을 목표로 수요예측을 준비 중이던 LG유플러스는 발행 일정 재검토에 들어갔다. KT도 최대 4000억 원 확보를 목표로 이달 수요예측을 준비중이었으나 시장 금리가 급등하면서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국내 인수합병(M&A) 시장도 위축되기는 마찬가지다. 4조원 규모 상장을 목표로 프리 IPO에 나선 SK온은 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대상으로 본입찰을 준비중이나 투자자들은 SK온의 적정 가치 산정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예비입찰이 이뤄지던 시기와 달리 최근 들어 투자 환경에 변화가 커지면서다. 예비 입찰에서는 글로벌 PEF 운용사 칼라일과, 블랙록, 싱가포르 국부펀드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이 포함됐다.
국내 자동차업계 M&A 최대어 한온시스템도 지난해 실적이 시장의 기대수준에 못미치면서 1년째 매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예비입찰 당시 한온시스템 지분가치는 6조9000억 원, 매각가는 8조 원 수준으로 추정됐다.
국내 사모펀드(PE) 업계 관계자는 “긴축 기조에 따른 금리인상으로 조달금리와 인수금융 금리가 오르면서 기대 수익률이 떨어지는 만큼 민간출자자(LP)들도 보수적으로 투자검토를 하고 있다”며 “국내 스타트업들 중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곳들도 코로나19 시기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으며 규모가 커져왔는데, 최근엔 이익창출을 하는 곳에 더 집중하고 이익을 내지 못하는 곳은 점점 밸류에이션을 낮게 평가받는 등 분위기가 바뀐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내 자산운용사 PE 담당자는 “M&A 경우 PEF는 인수금융을 활용하는데 인수금융 금리가 높아지자 현금흐름 등 고려사항이 많아지면서 인수물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며 “금융시장 위축으로 비상장 등 대체투자도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IPO시장에서도 상장 철회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기관 투자자들의 수요예측 과정에서 6개 기업이 철회에 나선 상황이다. 5월 한달 새 SK쉴더스, 원스토어, 태림페이퍼이 수요예측 이후 상장을 철회했다. SSG닷컴과 쏘카 등 올해 증시 입성 추진 기업 역시 상장을 미루거나 상장일정을 조정했다. 예비심사를 신청한 후에 심사 청구를 철회한 곳도 퓨처메디신, 애니메디솔루션, 드림인사이트, 큐알티 등 12개 기업에 달한다.
상장예비심사가 진행중인 기업들의 전망도 밝지 않다. 지난달말 기준 상장 예비심사가 진행중인 기업은 54개, 수요예측을 통해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은 17개로 파악된다.
글로벌 IPO시장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전세계 IPO규모는 810억 달러로 전년 대비 71% 감소했다. 상장사 수는 1237곳에서 596곳으로 절반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