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박찬욱 감독이 잊지 않고 한 말이 또 있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CJ와 미키 리(이미경 CJ부회장)에게도 감사를 보냅니다”라고 했다.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는 영화는 달랐지만 같은 회사인 CJ ENM이 투자, 배급을 맡았다. 박 감독의 표현대로 하면 따로 투자를 했지만 같이 상을 받은 것이다. 그만큼 CJ와 이미경 부회장의 기쁨도 크고 울림도 깊었을 것이다.
필자가 벤처업계에 있던 2000년대 초에 벤처의 자금이 영화계로 유입됐다. 삼성, 대우 등 대기업의 자본이 들어왔다 빈손으로 떠난 자리가 벤처투자로 메워 진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번지 점프를 하다’, ‘태극기 휘날리며’ 등 많은 히트작이 나왔다. 정부도 당시 스필버그 감독을 인용하며 영화 한 편이 자동차 몇십만 대의 수출 못지않은 효과가 있다며 투자를 장려했다. 그러나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돈은 쓰임새가 투명해야 했다. 반면 영화계는 현실을 모른다고 했다. 수백만 원어치 술자리를 가지고도 간이 세금계산서로 처리했다. 엑스트라의 숫자와 영수증의 숫자가 몇 배나 차이가 났다. 테헤란로의 논리와 충무로의 현실이 돈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겨나고 골이 깊게 파였다. 둘은 결국 갈라섰다. 그 당시의 문화투자가 그랬다.
그런데 CJ는 아니었다. 갈등을 포용하며 문화투자를 숙명처럼 이어갔다. CJ보다도 더 큰 기업들이 쓴 맛을 보고 떠나간 한국영화에 1995년 이래 27년간 2조 원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초조해하는 CJ 실무진에게 이미경 부회장은 조바심내지 말라고 달랬을 것이다. 스스로 제작총괄을 자처하고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아카데미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던 영화 ‘기생충’에서도 그랬다. 물론 엔딩 크레딧에 조그맣게 올랐다. 일부러 찾아보기 전에는 눈에도 띄지 않는다.
그러나 오너가 있는 회사의 직원들은 귀신같이 안다. 오너의 이름이 아무리 작게 기재돼 있어도 위치를 찾아내고 의미를 이해한다. 조급한 실무진을 달래고 시시콜콜한 간섭을 막아내는 최대한의 방어막을 쳤다. 돈을 두고 흔하디 흔하게 나타나는 문화와 자본의 갈등을 오너가 해결해 준 것이다. 긴 호흡으로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그 사이 영화계의 관리 능력도 촘촘해지고 많이 고도화됐으리라. 그러면서 문화와 자본의 갈등이 조정되고 깊게 파여진 골도 메워졌을 것이다. 공존하기 어려웠던 문화와 자본이 상생의 기간을 거치며 산업으로 탈바꿈했다. ‘기생충’은 205개국에 판권을 수출했고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는 192개국, 171개국에 선판매됐다.
한국 콘텐츠는 성공한다는 신뢰가 생겨나며 해외 제작사들까지 한국으로 끌고 왔다. 영화 ‘미나리’나 드라마 ‘파친코’가 대표적 사례다. 최근 개봉한 영화 ‘배니싱’은 프랑스 감독이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해 한국에서 촬영됐다. 2015년 6조 원 남짓이던 한국 콘텐츠 산업의 총수출은 2020년에 14조 원에 달해 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모두 CJ가 마중물 역할을 한 한국 문화산업의 진면목이라 할 것이다. 성장과 함께 공존과 상생의 해법도 제시했다. 서로 다르기는 해도 틀리지는 않기에 이해와 숙성의 기간을 거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나온다는 사례를 CJ의 문화 투자가 보여줬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나라가 어지럽다. 긴 팬데믹의 후유증도 만만찮다. 그런데 김병종 작가가 프랑스의 일화를 얘기해줬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각료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모두 암담한 경제지표를 얘기하는 데 대통령이 물었다고 한다. “프랑스에 시인은 몇 명이나 될까?” 시큰둥한 대답이 나왔다. “쌔고 쌨겠죠, 경제가 어려우니 더 늘어났겠죠.” 드골이 말했다. “그러면 됐지.”
문화의 힘은 오래간다. 이미경 부회장이 시도한 문화에 대한 자본의 이해가 한국 사회의 품격을 한 단계 더 높이고 지적으로 강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다르기에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기에 더 커질 수 있다는 모범적 사례를 CJ는 보여줬다. 따로 와서 같이 커나가 기쁨이 몇 배가 된 순간을 이미경 부회장은 한국 사회에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