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습니다. 1994년 11월 이후 28년 만에 가장 큰 인상 폭입니다.
자이언트 스텝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앞서 발표된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41년 만의 최고치인 8.6%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덮쳤고, 전문가들은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급격한 금리 인상은 1979년부터 1987년까지 연준을 이끌었던 폴 볼커 전 의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볼커의 해법이 또다시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폴 볼커 전 의장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수식어는 ‘인플레이션 파이터’.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20%대까지 끌어올리며 강력한 긴축 정책을 펼친 인물로 유명합니다.
1970년대 미국 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만성 인플레이션 상황이 길어지는 가운데 1973년과 1979년 1ㆍ2차 석유 파동(오일 쇼크)이 발생하면서 물가는 치솟는데 경기가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진 상태였죠.
물가 통제와 경기 부양 사이에서 볼커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볼커는 “인플레이션 용(The inflation dragon)을 잡아야 한다”며 긴축이란 무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취임 2개월여 만인 1979년 10월 6일 기준금리를 4%포인트 인상(11.5%→15.5%)하는 극단 조치를 단행합니다. 시장은 이를 두고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 평가했습니다. 그를 의장으로 지명한 지미 카터 대통령조차도 불쾌함을 표했습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볼커는 1981년 기준금리를 21.5%까지 끌어올리며 강력한 고금리 정책을 이어갔습니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 직후 미국이 치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돈줄이 막히자 주식시장이 폭락했습니다. 기업들의 파산이 잇따르며 실업률이 10%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의 원성도 커졌습니다.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올라와 볼커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볼커를 향한 위협도 지속됐습니다. ‘인플레이션 용’을 잡기 위한 볼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을까요?
다행히 이듬해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15% 가까이 치솟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2년 4%로 꺾였고, 1983년에는 2.36%까지 내려가며 안정세를 찾았습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이 완화되고, 석유 증산이 이뤄지면서 원유 가격이 떨어진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볼커의 강력한 긴축은 분명 고통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 1990년대 미국의 경기 호황을 이끌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41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 앞에 놓인 연준은 ‘볼커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제롬 파월 의장은 최근 볼커 전 의장을 수차례 언급하며 인플레이션 대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연준의 물가 통제 능력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약해졌다는 겁니다. 연준이 본격적인 긴축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였지만, 사실 물가는 2020년 말부터 상승할 조짐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연준은 지난해 말까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란 견해를 유지하며 시장과의 간극을 키웠습니다.
세계은행은 최근 한 보고서를 통해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유지할 능력에 대한 신뢰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볼커 전 의장 당시에도 그랬듯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경기가 침체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닥뜨릴 수도 있습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 이후 11번의 통화 긴축 기간 미국은 3번(1965년, 1984년, 1994년)을 제외하곤 모두 침체를 경험했습니다. 하건형, 안재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연준 역시 급격한 금리 인상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수요 둔화를 반영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했다”며 “4분기까지도 물가 불안이 계속될 경우 경제는 경착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