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크림반도 병합 후 연간 투입 비용 20억 달러
전쟁 전 우크라 동부 실효 지배 지역 124억 달러 지원 약속
‘확장주의’ 실패 구소련 전철 밟을 수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4개월로 접어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사회가 강력한 대러 제재를 쏟아냈지만 러시아 경제는 예상을 깨고 ‘순항’하고 있다. 경제 압박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의지를 꺾지 못하는 가운데 약점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 있을지 모른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분석했다.
서방사회가 대러 제재 고삐를 조이고 있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지난달 28일 독일 바이에른주 엘마우에서 사흘간 열린 정상회의를 폐막하면서 러시아 원유 가격 상한제 추진에 합의했다. 가격 상한선을 정해 러시아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재미’를 보지 못하도록 하고, 에너지 시장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경제 제재가 러시아의 전쟁 의지를 꺾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스트리아 싱크탱크인 빈국제경제연구소(WIIW)의 바실리 아스트로프는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두 자릿수 하락세를 보일 수 있다”면서도 “제재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더라도 러시아는 재정적 여유가 있어 전쟁을 단념할 유인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아킬레스건은 서방의 경제 제재보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 있을지 모른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를 지배하면서 떠안게 될 부담이 러시아 경제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점령 지역 주민의 반러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사회보장제도의 내실화를 도모해야 한다. 러시아의 막대한 보조금 투입이 불가피한 셈이다.
실제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연간 20억 달러(약 2조596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의회가 운영을 지원하는 자유유럽방송에 따르면 전쟁 전인 지난해 9월 말 러시아는 친러 세력이 실효 지배하는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에 124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격전지 도시 인프라가 거의 파괴돼 향후 막대한 복구비용이 추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은 이미 악화일로다. 4월 우크라이나 물가상승률은 평균 16%였는데 러시아 점령 지역은 37%에 달했다. 물자 반입이 차질을 빚은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은 점령 지역에 친러 정부를 세워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역사를 돌아보면 이 같은 확장주의가 역효과를 가져온 일이 많았다. 냉전시대 소련·동유럽에는 경제상호원조회의, 일명 ‘코메콘’이라는 경제협력 틀이 있었다. 소련은 값싼 원유 등을 동유럽의 위성 국가에 제공했다.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확보한 세력을 유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소련 경제가 휘청이면서 보조금을 삭감해야 했고, 경제협력 체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2년부터 1987년까지 5년간 동유럽 6개국에 대한 보조금은 20분의 1로 축소됐다. 이후 헝가리 등이 경제 자유화를 추진하면서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이어졌다.
소련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음에도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전쟁은 결국 실패로 끝났고 소련의 국력은 급격히 기울었다. 현재 러시아는 과거 소련의 실책을 반복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들의 이탈 움직임은 아직 없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점령 지역의 관리 부담이 커질 경우 러시아 정권도 타격이 불가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