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은 올 3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한국 작가 중 해당 부문에 후보로 오른 사람은 박상영을 포함해 황석영, 한강, 정보라 등 네 명뿐이다. 이번에 박상영은 최종 수상자로 호명되진 못했지만, 한국 퀴어문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만난 박상영은 부커상과 관련한 소회를 묻는 기자 질문에 “자기 의심을 거둘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분들은 내가 퀴어라는 소재에 힘입어 실력 이상의 평가를 받는다고 비판한다. 나도 한동안 그 말이 진짜가 아닐까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부커상 후보에 오른 일은 내가 단순히 퀴어소설을 썼기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서양은 퀴어문학이 한국보다 훨씬 대중적이다. 그 가운데서 내 소설이 나름의 문학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한국을 벗어난 곳에서도 내 소설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솔직히 욕심이 나서 한동안 마음이 힘들기도 했다. 만약에 실제로 수상했다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다. 또 어딜 가든 ‘부커상 노미네이트 작가’라고 불러주니까 기분이 좋다”며 밝게 웃었다.
최근 박상영은 ‘믿음에 대하여’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과거 회사원과 작가라는 두 가지 정체성으로 살아갔던 날들을 회상하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발명해낸 행복과 불행을 자주 생각했다. 이 책의 곳곳에는 그 시절, 내 마음의 온도가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 온도는 사랑으로 인한 행복과 불행의 풍경에 명징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박상영은 이번 소설에서 그 풍경들 사이로 틈입해오는 사회의 부조리와 삶의 불가해성(不可解性)을 특유의 재기 발랄한 문체로 묘파해내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한층 더 확장시켰다. 그런 점에서 ‘믿음에 대하여’는 박상영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책이며, 규범이라는 폭력성이 얼마나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지 고발하는 소설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인간의 쓸쓸한 감정에 집중하는 소설이라면, ‘믿음에 대하여’는 규범이라는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폭압적인 사회와 소수자의 정체성을 지니며 살아가는 인간의 관계성에 관한 소설이다. 멜로드라마의 외피를 두른 고발문학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책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두 소설은 모두 연작소설이라는 공통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박상영은 “‘대도시의 사랑법’이 한 사람의 삶을 다소 느슨하게,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연작소설의 효과에 대해서는 “하나씩 끊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부담이 적다. 동시에 작가로서는 긴 분량의 서사를 짧은 호흡으로 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선호하는 형식”이라고 덧붙였다.
‘믿음에 대하여’에 수록된 네 편의 이야기는 모두 2년 전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급증했던 시기를 직간접적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박상영은 “그 일은 우리 사회에서 누가 진짜 약자인지 잘 드러낸 사건이었다. 또 방역 정책에 대한 딜레마를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건이라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사회적 소수자가 배척당하는 일이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이었기 때문에 2020년의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을 기록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의 제일 중심에 놓게 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