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것만 같았던 곡물 가격이 예상보다 빠르게 내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곡물 가격 안정세를 체감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8월 셋째 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밀 선물 가격은 부셸 당 7.7달러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5월 밀 선물 가격 부셸 당 12.79달러보다 크게 내려갔다. 부셸은 곡물 중량 단위로 1부셸은 27.2kg이다. 옥수수와 팜유 역시 전쟁 전 수준을 되찾는 등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초 곡물 가격 상승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길어지면서 함께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 주요 곡창 지대인 우크라이나에 전쟁으로 인한 기근이 발생하고,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최악의 결과는 피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유엔 중재로 우크라이나 곡물이 오데사 항구에서 수출될 수 있게 된 점을 가격 하락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이와 함게 러시아의 수출 증대도 주요 이유로 꼽힌다. 올해 초 날씨가 좋아 수확이 잘 되면서 물량이 늘었다는 것. 미국 농림부는 2022/2023 시즌 러시아의 밀 수출량은 지난 시즌보다 200만t 늘어난 380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 중이다.
곡물 가격 하락세를 소비자들이 곧바로 체감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근 ‘슈퍼달러’ 현상 때문이다. 밀 가격이 달러화 기준으로 내린 것을 맞지만, 주요 밀 수입국들의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곡물 가격 하락 효과를 보기 힘들어졌다.
밀을 주로 수입하는 터키와 이집트의 달러 대비 통화가치는 올해에만 26%, 18% 내렸다. 우리나라 달러 환율 역시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12.4%가량 올랐다.
또한, 당장 줄어든 곡물 가격이 수입가로 반영되기 전까지 시차가 존재한다. 한국농총경제연구원은 ‘원재료 수입가격 상승의 가공식품 물가 영향’ 보고서에서 2분기에 고점을 보였던 곡물 가격이 3분기 수입 가격에 반영되면서 3분기 곡물 수입 가격은 2분기보다 약 16%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듯 해외 곡물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곡물 국내 수입가 상승이 예상되면서 사료 등 관련 업종 주가가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80%에 육박하는 국내 식품업계는 가격 인상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8월 라면 가격을 올린 농심은 1년 만에 라면과 과잣값 인상을 예고했다. 농심은 추석 연휴 이후인 9월 15일부터 라면과 스낵 주요 제품의 출고 가격을 각각 평균 11.3%, 5.7% 인상한다고 24일 밝혔다.
이에 따르면 신라면(10.9%), 너구리(9.9%) 등 라면 26개 품목과 새우깡(6.7%), 꿀꽈배기(5.9%) 등 스낵 23개 품목이 추석 이후 오른다.
농심은 이달 16일 2분기 국내 영업이익에서 30억 원 적자를 봤다고 공시했다. 당시 농심 측은 “국제 원자재 시세 상승과 높은 환율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1위 농심의 제품 가격 인상으로 경쟁사인 삼양식품과 오뚜기 등도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빵값도 마찬가지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빵 가격은 지난해대비 12.6% 올라 가공식품 중 가장 큰 상승률을 보였다.
프랜차이즈 식품업계도 제품값을 올리고 있다.
노브랜드 버거는 이달 18일부터 메뉴 40여 종의 값을 5.5% 인상했고, 지난 한국 맥도날드는 25일부로 68개 메뉴의 가격을 평균 4.8% 올릴 예정이다. 버거킹과 롯데리아 등도 추가 가격 인상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