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의 췌장암 치료제 개발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다른 암에 비해 5년 생존율이 턱없이 낮음에도 여전히 탁월한 치료제가 없는 췌장암은 효과적인 신약만 나오면 확실한 '대박'이 약속된 시장이다.
5일 이투데이 취재 결과 국내 기업들은 임상 개발 초기인 1상에서 3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에서 췌장암 치료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 임상은 대부분 글로벌제약사가 시판 중인 기존 치료제와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을 같이 쓰는 병용요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메드팩토는 내년 1월 미국임상종양학회 소화기암 심포지엄(ASCO GI)에서 백토서팁과 오니바이드 병용 연구자 임상 결과를 선보인다.
앞서 백토서팁과 폴폭스의 병용 임상은 올해 6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1b상 중간 데이터기 공개됐다. 백토서팁 200mg을 1일 2회 투여한 13명의 환자에게서 객관적 반응률(ORR)은 23.1%,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 5.6개월로 나타나 폴폭스 단독 요법(ORR 0%·mPFS 1.7개월)보다 우수한 효과를 나타냈다. 오는 13일 열리는 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는 전체 생존율 중간값(mOS)도 추가 공개할 예정이다.
메드팩토 관계자는 “췌장암 2차 치료제 시장에서 오니바이드는 약 20%, 폴폭스는 약 1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전임상 결과 오니바이드 병용 요법이 폴폭스 병용 요법보다 좋은 데이터를 얻었다”면서 “오니바이드 병용 요법으로 9~10월 중 허가 목적 임상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면역항암제 NT-I7을 개발 중인 네오이뮨텍은 펨브롤리주맙과의 병용 요법을 통해 췌장암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올해 6월 유럽종양학회 주관 위장관종양학회(ESMO GI)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암 크기가 기존 대비 30% 이상 줄어든 환자는 7.7%, 반응지속기간은 7.2개월로 나타났다. 특히, 간 전이가 한 군데 이하인 췌장암 환자의 암 진행 통제율은 63.6%, mPFS는 18주를 기록해 전체생존기간(OS)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회사 관계자는 “면역관문억제제로도 반응이 나타나지 않던 췌장암에서 NT-I7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학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네오이뮨텍은 연내 25명을 추가 모집해 안전성과 효능 데이터를 확보, 본격적인 허가를 위한 임상을 디자인한다. 최근 췌장암 관련 권위자를 과학자문위원회에 영입해 상업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전통 제약기업 계열사들의 췌장암 임상도 활발하다. GC녹십자 자회사인 GC셀은 이뮨셀엘씨주로 췌장암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근치적 절제술(암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한 췌관선암 환자를 408명을 대상으로 젬시타빈 단독치료군과 이뮨셀엘씨주 병용치료군으로 나눠, 병용치료군에게는 젬시타빈 표준치료와 함께 이뮨셀엘씨주 16회를 추가 투여해 재발방지 효과와 생존률을 확인하는 임상이다. 이뮨셀엘씨주는 췌장암에 앞서 2007년 간암 항암제로 품목허가를 받은 바 있다.
회사 관계자는 “췌장암 연구자 임상 2상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얻었던 만큼 상업화 임상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순조롭게 임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췌장암 신약 후보물질 JPI-547의 임상 2상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3월 FDA 희귀의약품에 지정됐고, 국내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개발단계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물질이다. 임상 1b상에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기 위해 국소 진행성·전이성 췌장암 국내 환자 48명에게 JPI-547과 폴피리녹스 또는 젬시타빈·아브락산을 병용투여했다.
JPI-547은 파프(PARP)와 탄키라제(tankyrase)를 동시에 억제하는 이중저해 표적 항암제다. 파프는 세포의 DNA 손상을 복구하는 효소로, 암세포 DNA까지 복구하기 때문에 이를 억제해야 암세포 사멸을 유도할 수 있다. 탄키라제는 종양 발생 경로나 텔로미어 유지, 유사 분열 등을 포함하는 과정들과 연관돼 암의 발병과 진행을 조절하는 중요한 암 치료 표적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췌장암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는 시장 특성과 연관있다. 다른 암에 비해 시장 규모가 작지만, 발병률에 비해 사망률이 높고 뛰어난 치료제가 없어 그만큼 미충족 수요가 크다. 글로벌 신약 개발 경쟁에서 선두권이 아닌 국내 기업들에 췌장암은 매력적인 틈새시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췌장암 치료제는 더 큰 시장을 노리는 글로벌 빅파마보다는 바이오기업들에게 적합한 시장”이라며 “개발 과정은 험난하지만 성공하면 확실한 수익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