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역이 초강력 태풍 '힌남노'의 영향권에 들었다는 소식에, 평생을 도시서만 산 친구가 어찌 버틸까 걱정이 돼 안부 전화를 걸었다.
"비가 많이 오긴 하는데 아직은 괜찮아. 그보다 당장 내일 애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게 더 걱정이다."
휴교령이 떨어지면서 유치원이 문을 닫는다고 했다. 지붕이 뜯기고 사람이 날아갈 정도라는데 재택 안 하느냐 되물었더니 '내일 조심해서 출근하라'는 상사 문자를 받았단다.
아이들 아빠는 중요한 미팅이 잡혀있고, 도움을 청할 친척도 근처에 없고, 방학 내 아이를 봐주던 돌봄 도우미는 난색을 표하고. 긴급 보육을 보내려니 'OO이 한 명만 오네요'란 선생님의 말이 마음에 걸린단다.
친구의 사정이 속상해 그만 "거길 왜 갔어"란 말을 내뱉어 버렸다. 태풍보다 머릿속이 더 복잡한 친구에게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ㆍ유연근무가 확산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가슴까지 차오른 빗물을 뚫고 회사에 가는 'K-출근러'다.
그나마 대기업은 주 4일제·단축근무 등이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대체 인원과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높은 집값, 낮은 임금, 과한 교육열. 그 가운데 '애 키울 시간이 없다'는 게 큰 비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 역시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바쁘다. 선선한 가을 바람 맞으며 산책하는 것 조차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그나마 근처에 사는 시어른들이 도와줘 근근히 버티고 있다. 어느샌가 '내 시간을 잃었다'는 생각을 갖는 건 사치로 느껴진다.
'돈만 퍼준' 그간 한국의 저출산 대책은 실패했다. 2020년 기준 0.84명인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0명으로 내려앉고, 최악의 시나리오(저위 추계)로는 2025년 0.61명으로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연근무=엄빠(엄마아빠)만의 제도'란 낙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제도화하려는 논의가 필요하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는 18살 미만 자녀를 둔 사람에게는 법률에 따라 출근 근무를 강요할 수 없고, 본인이 원하면 재택근무를 보장해야 한다. 무상급식과 교육의 효과가 더해지긴 했지만 그 결과 칠레의 출산율은 반등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고령화와 맞물려 다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노동 환경이 변화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아이 울음소리는 더 줄어들 것이다. 삶의 여유를 찾아 제주에 갔지만 둘째 아이 출산은 진작에 접었다는 친구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