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살인 사건’ 등 스토킹‧강력 범죄들이 줄지어 발생하면서 법무부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스토킹처벌법(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단계에서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했다면 이처럼 참혹한 사건을 막을수도 있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19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되고 시행된 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실을 중심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당시 법무부 내부 보고 자료 등에는 스토킹행위의 대상을 확대하고 신변안전조치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제18조 3항)’를 삭제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 기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실은 스토킹 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처벌의사를 밝히기 어렵고 합의 요구를 위한 협박 우려가 높다는 점에서 해당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태스크포스)’도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돼 시행 중이나, 스토킹 피해자가 신변 보호 중 가해자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스토킹 범죄 특성을 고려해 피해자 안전조치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고 방안을 마련해 내부 보고한 바 있다.
당시 법무부가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이후에 발생한 스토킹 관련 범죄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나온다. 지난해 3월 만들어진 법안은 10월에 시행됐으나, 이후에도 서울 중구 오피스텔 여성 피살, 송파구 신변보호 대상자 가족 피살, 구로구 호프집 여성 피살 사건 등 범죄가 줄을 이었다.
물론 반의사불벌죄 폐지만으로 모든 스토킹 범죄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에서 가해자들이 합의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2차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수의 보복성 범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여성계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여러 피해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뒤늦게 해당 조항 폐지 추진 계획을 밝혔다. 법무부는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현재 스토킹처벌법이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초기에 수사기관이 개입해 피해자를 보호하는데 장애가 있고, 가해자가 합의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2차 스토킹범죄나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보복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입법 속도에 집중한 나머지 세부적인 내용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의견도 있다. 디지털성범죄TF 내부 분위기를 잘 아는 한 검찰 관계자는 “그때 스토킹처벌법을 만들어서 적용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반의사불벌죄 삭제’ 등 욕심을 내기 어려웠다”며 “처음부터 보다 강력한 법을 만들면 반대 의견도 많이 나올 수 있으니 일단 법안을 빨리 만들고 나머지는 천천히 시행하면서 적용하자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송석준‧태영호‧전주혜‧이종배 의원 등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를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모두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양성평등정책특별자문관과 디지털성범죄TF 팀장을 지냈던 서지현 전 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양성평등정책특별자문관 당시 스토킹처벌법 개선방안을 작성해 수차례 보고하고 찾아다니며 입법을 호소했지만 결국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야만 개정을 논한다”고 토로했다.
최근 서울지하철 신당역에서 스토킹범죄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던 가해자가 피해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14일 전 직장동료를 살해한 전주환(31) 씨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보복살인을 적용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