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은 더 미룰 수 없는 발등의 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일 공개된 ‘한국 연금제도 검토보고서’에서 강력한 개혁을 주문해서가 아니다. 고령화로 수급자가 2005년 165만 명에서 2020년 539만 명으로 급증해 기금 고갈이 빨라지고 있다. 이대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OECD의 개혁 방향을 요약하면 “보험료를 더 내고 보험 수급 개시 연령을 높여라”라는 것이다. OECD는 “보험료율을 가능한 한 빨리 합리적인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며 “60세 이후에도 보험료 납부를 지속할 수 있도록 의무가입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98년 9%로 오른 뒤 24년째 그대로다. 국민연금 의무납입 연령은 59세까지다. 60세 이후에는 소득이 있어도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현재 62세인 수급 개시 연령을 2034년 65세로 높이겠다는 정부 구상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없는 만큼 2034년 68세로 올려야 한다는 게 OECD 주문이다.
OECD는 “기준소득월액 상한을 인상해 급여 인상에 기여하라”고도 했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 산정 기준소득월액 상한액은 월 553만 원이다. 보험료는 소득에 비례해 높아지지만, 월 553만 원 이상의 소득이 있더라도 더 내지는 않는다. 이 기준선을 높여, 더 많이 보험료를 걷어 재원을 마련해 ‘주는 돈’을 높이자는 게 OECD의 권고다. 1인당 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은 58만7000원이다. 최저임금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쥐꼬리 연금으로는 OECD에서 가장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OECD의 권고는 새로울 건 없다. 이미 해답은 나와 있다. ‘더 내고 덜 받는 ’ 방식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거부했던 개편안의 방향도 같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소득대체율 45%를 40%로 낮추고 보험료율을 9%에서 15%로 올리는 방안을 만들었지만, 문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보험료를 놔둔 채 소득대체율을 높여 연금을 더 주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주문이었다. 결국 정부는 보험료를 조금 더 내고(12∼13%) 연금도 조금 더 받는(소득대체율 45∼50%) 내용 등의 4가지 개편안을 마련했지만 유야무야됐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반길 리 없다. 자칫 역풍에 민심이 등을 돌릴 수 있다. 연금 개혁에 공감하면서도 정부와 정치권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게임이다. 그렇다고 피해갈 방법도 없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 커진다. 이대로라면 2042년 기금이 적자로 돌아서고 2057년엔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결국 결단의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약속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확실한 대안을 만들어 국민을 설득하는 게 맞다. 표 논리에 과거와 같은 비겁한 행태를 되풀이하는 건 미래 세대에 폭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