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 아시아 경제·무역·금융에 미치는 영향 막대
인민은행, 위안화 방어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 없어
아시아 통화 최근 움직임, 위안화·엔화와 같은 방향으로
짐 오닐 “달러·엔 150엔 돌파하면 대형 위기 초래”
아시아 양대 통화인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19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고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또 한국 원화는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아시아에서 가장 취약한 통화 중 하나로 꼽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경한 ‘매파’ 기조와는 정반대로 중국 인민은행과 일본은행(BOJ)은 ‘비둘기파’ 기조를 유지해 위안화와 엔화 가치 하락세가 한층 거세졌다.
달러·위안 환율은 중국 정부의 완고한 ‘제로 코로나’ 정책과 부동산시장 침체에 따른 경기둔화까지 겹치면서 이달 초 심리적 저지선인 7위안을 돌파하고 나서 2년래 최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인민은행은 이날 “28일부터 외환 선물환에 대한 외환위험준비금 비율을 기존 0%에서 20%로 상향 조정한다”며 위안화 방어에 나섰다. 외환위험준비금은 선물환 거래를 할 때 인민은행에 1년간 예치해야 하는 금액이다. 이 비율을 높이면 거래 비용이 늘어나 위안화 매도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위안화 환율이 여전히 7위안을 웃도는 등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엔화 환율은 22일 24년 만에 145엔을 처음으로 넘으면서 같은 날 당국이 역시 24년 만에 처음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강달러에 따른 피해를 줄이고자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환율 안정에 나섰지만, 위안화와 엔화의 계속되는 약세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는 중국과 일본이 역내 경제와 무역, 금융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아시아 양대 경제국 통화 가치 폭락으로 해외 펀드가 아시아 전체에서 자금을 회수해 대규모 자본 이탈로 이어지면 진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또 경쟁적인 평가절하가 수요와 소비자 신뢰의 약화라는 악순환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13년 연속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며 일본은 아시아에 막대한 자본과 신용을 제공하고 있다. 또 BNY멜론투자관리에 따르면 위안화가 아시아 통화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 이상이다. 엔화는 세계에서 3번째로 매매가 많은 통화이면서 다른 아시아 통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최근에는 두 통화 가치가 다른 아시아 국가 통화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일례로 엔화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통화지수의 120일간 상관계수는 지난주 0.9 이상으로 뛰어 201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계수가 1.0에 가까울수록 두 비교 대상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브릭스(BRICs)’ 용어의 창안자로 유명한 짐 오닐 전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은 “달러·엔 환율 150엔 등 특정 선이 뚫리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규모의 혼란이 올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미즈호은행의 비슈누 바라탄 경제·전략 대표는 “위안화와 엔화는 큰 닻과 같아서 이들의 약세는 다른 아시아 통화를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며 “이미 아시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압박 정도로 향하고 있다. 손실이 깊어지면 그다음은 아시아 금융위기”라고 강조했다.
물론 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 당시보다 외환보유고가 충분하고 막대한 달러 차입에 따른 리스크에도 덜 노출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맥커리캐피털은 “한국 원화와 필리핀 페소, 태국 바트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아시아에서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통화들”이라며 “위안화와 엔화가 모두 하락하면 신흥국 통화에 노출된 투자자들의 헤지 수요로 인해 달러 매수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싱가포르 소재 DBS그룹의 타이무르 바이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위험은 금리보다 아시아 국가에 더 큰 위협”이라며 “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수출국이어서 막대한 부수적 피해가 없어도 1997~98년 위기의 재현을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