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 1.1도 웃돌아
폭염으로 재배 어려워지자 품종·재배지역 바꾸는 농장 늘어나
올해 유럽 곳곳은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과 가뭄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프랑스 와인 대표 산지인 보르도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계 최고가 와인 중 하나로 꼽히는 ‘리베르 파테르’ 포도밭의 농장주 로익 파스케는 이번 대형 산불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미리 산불이 건너오지 못하도록 방화용 참호를 파놓고, 쓰러진 나무를 쌓아둔 덕에 산불 영향권에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WSJ는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수많은 프랑스 포도 농장주가 포도가 제대로 익기 수주 전부터 수확을 미리 해두거나, 기온이 낮은 곳으로 재배지를 옮기고 있다”며 “몇 세대에 걸쳐 고수했던 재배 방식을 포기하는 농장도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포도 품종, 재배 지역을 포함해 와인 생산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왔으나 이를 유지하기 힘들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와인용 포도는 기후에 매우 민감하다는 특징이 있다. 따뜻한 햇볕에 포도가 익으며 당을 만들면 이 당이 알코올로 변한다. 이 때문에 빛을 너무 많이 쬐게 되면 알코올 농도가 높아져 와인 맛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그러면 와인보다는 잼의 맛에 가까워지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보르도 지역을 포함한 프랑스 남부는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이 1.5도 올라 지구 평균 상승폭 1.1도를 웃도는 상황이다.
와인 전문가들은 최고급 와인은 포도 생산의 북쪽 한계선 주변에서 재배된다고 말한다. 그런 기후 조건이어야만 포도가 숙성하고 풍미가 익어갈 시간이 주어져 다양한 풍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농장주들은 보르도 북쪽 대서양 해안을 따라, 한때 바람이 너무 거세고 기온이 낮아 꺼리던 브르타뉴와 노르망디에도 재배를 위한 토지를 매입하고 있다.
하지만 경작지가 변경되면 규제에 따라 와인의 원산지 표기가 달라지게 된다. 프랑스의 엄격한 와인 원산지 규정에 따르면, 보르도의 특정 지역 바깥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은 더는 보르도 와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보르도 고급 와인 생산 사수를 위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재배 품종 변경은 물론 일부 농장에서는 겨울에 빗물을 모았다가 관개 시설로 보내기도 하고, 포도나무를 심는 밀집도를 낮춰 물의 필요량을 줄이고 있다. 일부는 햇볕 노출을 줄이려 포도나무를 심는 방향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한편, 샹파뉴(Champagne)를 포함한 프랑스 북부는 아직 기후변화에 선방 중이라고 WSJ는 전했다. 올해 어린 포도나무와 달리 뿌리를 깊게 내리고 다 자란 포도나무에서는 껍질이 두껍고 알이 자잘한 포도가 많이 열렸다는 것이다. 샴페인 양조장 관계자는 “이제 지구 온난화 영향이 느껴지기는 한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부정적 영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