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박수홍의 친형이 출연료 횡령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박수홍 부친이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가족끼리 벌어지는 재산범죄 처벌을 제한하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폐지론이 꿈틀거리고 있다.
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박수홍 부친은 횡령과 자산관리를 직접 맡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수홍의 법률대리인인 노종언 변호사는 "친족상도례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족상도례는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존속한 개념이다. 4촌 이내 인척이나 배우자 간에 발생한 절도, 사기죄 등 재산범죄형을 면하는 특례조항이다. 형은 비동거 친족으로서 범죄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 고소하면 처벌할 수 있지만 부친이 횡령하면 친족상도례 대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박수홍 소송을 계기로 친족상도례 관심이 커지면서 폐지 논의가 불붙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발간한 '형법상 친족상도례 조항의 개정 검토'에서 "관련 논의가 형사 법리로 이어지고 있다"며 "국민 인식과 친족상도례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고려할 때 현시점이 조항 개정을 검토할 수 있는 적기"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해외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의 경우 유사 규정을 둔 외국 국가들보다 친족 범위가 넓은 데다, 효과도 형 면제 등이 포함돼 가해자에 유리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일본도 민법상 친족 범위가 한국보다 좁고 법조문에 직계혈족·동거친족·동거가족의 ‘배우자’ 언급이 없다. 법 조문과 구조, 문언이 한국과 유사하지만 적용 범위가 좁은 셈이다.
박수홍 소송 외에도 친족상도례로 피해를 보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올해 5월 경남 창원에서는 딸이 엄마 명의로 몰래 카드를 만들어 수천만 원의 빚을 떠넘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딸이 남편 수술비가 필요하다며 모친에게 돈을 요구한 데 이어 모친 명의로 만든 카드로 2700만 원을 사용하고 대금을 연체했다. 모친은 딸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지만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만 받았다.
국회에서도 친족상도례 폐지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지적장애가 있는 장애인이나 치매 환자 가족 등이 친족상도례를 악용해 재산범죄를 저지르면 처벌이 어렵고, 변제를 약속해놓고 친고죄 고소 기간이 지나 처벌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친족상도례를 전면 폐지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친족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형을 면제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친족상도례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이 의원은 "가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그 형태 또한 다양해진 만큼, 친족상도례가 여전히 정당성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시대 변화에 따라 일부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이전에는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 일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며 "하지만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등에 공권력이 개입해 시시비비를 가릴 정도로 시대가 변했고 친족상도례도 재검토할 때"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신중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서울의 한 판사는 "헌법재판소가 2012년 가정 내부 문제는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법 취지를 밝힌 적 있다"며 "법 폐지 시 발생하는 혼란과 부작용을 고려하면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도 늦지 않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