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산업의 위기가 현실화했다. 삼성전자가 매출 1위 자리를 내준 대만의 TSMC를 따라잡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경쟁자들의 맹추격에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와 국내 정치 리스크까지 겹겹이 악재다. 메모리 불황의 장기화 전망까지 나온다. 산업의 ‘게임체인저’로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의 위기는 우리 경제의 위기다.
삼성전자가 3분기에 매출 1위 자리를 내준 게 반도체산업의 위기를 함축한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31.7% 급락하는 ‘어닝 쇼크’를 기록한 것은 반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메모리 업황이 급속히 악화한 탓이다. 반면 TSMC는 파운드리 호황에 힘 입어 약 27조5000억 원의 매출로 24조∼25조 원대로 예상되는 삼성전자를 제쳤다. 파운드리 호황으로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200조 원을 투입, 시스템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섰으나 TSMC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메모리 불황이 내년 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만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 D램·랜드플래시 평균 판매가격이 올해보다 2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 매출전망을 30% 이상 낮춘 이유다.
경쟁 업체들은 무서운 속도로 쫓아온다. 미국 최대 메모리 제조사인 마이크론은 뉴욕주에 1000억 달러(약 143조 원)를 투입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일본 대만 등 해외 생산 일변도에서 탈피해 미국에 생산거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반도체육성법에 따라 투자액의 절반 이상을 정부가 댄다. 마이크론은 올해 5세대 10나노급 D램 제품 양산을 선언, 삼성전자를 맹추격 중이다. IBM은 10년간 반도체 연구·개발을 위해 200억 달러(약 28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YMTC 등 중국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규제도 리스크다. 미국은 고성능 반도체와 슈퍼컴퓨터용 칩 수출을 통제하고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기술 판매를 금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당초 우려했던 직접 제재를 피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은 중국에 공장을 둔 한국 등 외국기업에 대한 장비수출을 개별 심사를 거쳐 허가하기로 해 당장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낮다.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공조 덕분이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심사 과정에서 기술 유출 및 사업 지연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결국 해답은 첨단 기술에 있다. 미국도 어쩔 수 없는 반도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기업의 힘만으로는 버겁다.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 한다. 반도체 경쟁력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념의 문제도, 부자감세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 미래가 걸린 문제다. 여야가 정쟁으로 허송할 때가 아니다. 우리도 미국처럼 반도체산업 육성책을 담은 반도체특별법(K칩스법) 처리를 서둘러 기업들을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