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이후 세 번째 시장 개입
파운드·달러 환율 1.10달러선 아래로 추락
나스닥, 올해 두 번째 약세장 진입
수조 달러 규모 미국 CLO 시장도 요동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불과 2주 새 세 차례나 채권시장에 개입했다.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한 후 금융시장이 발작을 일으키자 국채 매입에 나서면서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시장 불안이 계속되면서 국채 금리는 계속 치솟고 파운드화 가치는 또다시 하락했다. 영국 금융시장 위기가 미국으로도 옮겨 붙고 있어 연쇄 파급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영란은행은 이틀 연속 시장 개입에 나섰다. 전날 국채 매입 규모를 종전의 하루 최대 50억 파운드에서 100억 파운드(약 16조 원)로 두 배 확대한 후 이날 매입 대상을 물가지수연동국채로 넓혔다.
영란은행은 지난달 28일 첫 국채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가 430억 파운드 규모 감세안을 발표한 후 국채시장에서 매도세가 속출하자 개입에 나선 것이다.
세 차례 개입에도 시장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영란은행 총재가 국채매입 지원 시한을 14일로 못 박으면서 혼란을 부채질했다.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이날 연기금 펀드매니저들에게 “시장 유동성 공급이 계획대로 사흘 뒤 종료된다”며 포지션 정리를 촉구했다. 금융당국의 강경 입장 소식에 파운드화 가치는 또다시 하락했다. 파운드·달러 환율은 1.096달러로, 지난달 29일 이후 처음으로 1.10달러선 아래로 내려왔다.
영란은행 총재의 채권 매입 종료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만인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해 영란은행이 긴급채권 매입을 14일 이후로 연장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영란은행의 갈지자 행보가 시장 혼란을 더 부추기는 분위기다.
시장은 영란은행이 채권매입 시한을 더 늘려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고민도 깊다.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물가 상승을 더 부채질할 수 있는 양적완화를 오래 유지하기 어려워서다. 영란은행은 10% 가까이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달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밟았다. 물가를 잡으려고 ‘긴축’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양적완화’도 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영국 시장 불안이 미국 월가로 번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이날 미국증시 나스닥지수는 전고점인 8월 15일 대비 20% 이상 하락하며 올해 들어 두 번째 약세장에 진입했다. 나스닥지수가 1년에 두 차례 약세장에 들어선 것은 2001년 이후 처음이다.
수조 달러 규모의 미국 CLO(대출채권담보부증권) 시장도 요동쳤다. 영국 연기금, 보험사, 펀드를 포함한 글로벌 투자자들은 파운드 가치가 하락하고 영국 국채 가격이 폭락하면서 마진콜을 맞추기 위해 CLO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CLO 가격이 급락하자 일부 투자펀드는 저가 매수에 뛰어들었다.
WSJ 분석 결과 최근 CLO 채권 거래는 지난 2020년 3~4월 이후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영국 투자자들의 CLO 강제 처분으로 회사채와 주식, 모기지담보증권(MBS)과 자산유동화증권(ABS)도 직격탄을 맞았다. CLO 시장 불안은 월가에 큰 수익을 안겨주는 차입매수 시장에도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금융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