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격리 1조 원 이상 재원 낭비 초래…농업 예산 치우칠 우려"
"정부가 의무매입한 쌀은 나중에 주정이나 사료용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매입가와 판매가에서 큰 차이가 나고, 여기에 보관료까지 더해지면 1조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갑니다. 이 비용은 쌀 매입량이 많아지면 2조 원까지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7일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는 양곡관리법 개정을 두고 반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정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지금까지 쌀에 집중됐던 정부 예산을 다른 작물이나 사업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다시 되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생산량이 예상 수요량 대비 3% 이상이거나 가격이 5%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법에서도 쌀 과잉이 발생하면 정부가 시장격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여기에 강제성을 두겠다는 것이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개정안 통과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앞서 1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했고, 농해수위 전체회의,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정 장관은 이 과정에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개정안은 여야가 충분히 논의하고 추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도 곤욕스럽다"며 "현재 쌀이 꾸준히 과잉 생산되는 상황에서 쓸 필요가 없는 예산을 쓰게 되고, 청년농 육성이나 미래 농업을 위한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지금까지 쌀 수급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시장이 아닌 인위적인 수단은 결국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타작물 재배 지원이나 생산조정제 등 정부에서 꾸준히 노력했지만 우리가 내린 결론은 현행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2018년부터 3년간 매년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에 약 1000억 원의 예산을 썼지만 실제로는 쌀 재배면적이 감소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일부 농업 현장에서는 쌀 재배면적이 줄어들면 가격이 오르고 판로가 확보된다는 생각까지 한다고 정 장관은 우려했다. 그는 "현재 조사 결과로는 매년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벼 재배면적 추세를 봤을 때 가만히 둬도 2030년이 되면 65만5000㏊까지 감소하는데, 만약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 69만8000㏊까지 줄어드는데 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장관이 제시하는 대안은 바로 가루쌀이다. 가루쌀은 불림 등 별도 과정 없이 바로 밀가루처럼 가공해 사용할 수 있는 쌀 품종이다. 꾸준히 가루쌀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그는 가루쌀이 쌀 재배면적 대체는 물론 밀과 콩 등 이모작을 통해 식량수급 문제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장관은 "매년 쌀 과잉 생산이 20만 톤 이상 발생하는 상황에서 가루쌀 재배가 늘어나면 쌀 생산은 그만큼 줄어들고, 밀 수입도 마찬가지로 감소할 것"이라며 "또 가루쌀은 이모작을 의무화했기 때문에 밀과 콩의 생산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100㏊에 이어 내년에는 2000㏊의 가루쌀 전문생산단지를 구축하고, 2026년까지는 4만2000㏊까지 늘릴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