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보다 약 7배 폭등
뉴욕시장은 '투기적 매수세’ 유입
프랑스 파업 장기화,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임박 등 재고 우려 고조
세계 경유시장에서 현물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있다. 재고 부족 우려가 커지면서 높은 프리미엄이 붙은 채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는 경유 가격 급등으로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럽 경유 현물시장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형성되고 있다. 트레이더들은 지난주 한때 경유 실물을 확보하기 위해 톤당 최대 160달러의 프리미엄을 감수해야 했다. 불과 한 달 전 톤당 24달러에서 약 7배 폭등한 수치다.
뉴욕시장 상황도 마찬가지다. 현물 가격에 붙는 프리미엄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8월 이후 ‘백워데이션’이 나타나고 있다. 백워데이션은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보다 낮은 비정상적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시장은 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높다. 미래 시점의 불확실성에 대한 보상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백워데이션은 시장 전망이 안 좋아지면서 투기적 매수가 급격하게 늘어날 때 발생한다. 시장 상황이 불안해 값이 오를 것으로 전망되면 미리 사두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현물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뛰게 된다.
미국의 경유 재고가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일주일간 경유와 난방유 등 정제유 재고는 전주 대비 485만3000배럴 줄어든 약 1억606만 배럴로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8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낮은 재고를 우려하며 연료 생산업체에 해외 수출 규제를 촉구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공급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유가 비정상적으로 거래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 파업이 길어지고 유럽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가 임박하는 등 추가 악재도 쏟아지면서 시장 불안이 다시 커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27일부터 시작된 석유기업 노동자 파업이 3주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 여파로 전국 주유소의 3분 1이 휘발유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서방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 시한이 다가오는 것도 불안을 자극한다. 유럽연합(EU)은 대러 제재 차원에서 올 연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90% 줄일 예정이다. 지금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있지만, 유럽 에너지 수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지난달 유럽이 수입한 경유 가운데 러시아산이 차지한 비중은 41%에 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없이도 올겨울을 버틸 수 있도록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의 준비를 해뒀지만, 뭐든 하나라도 잘못되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파가 찾아오거나 파이프라인이 망가질 경우 유럽에 심각한 에너지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개리 로스 블랙골드인베스터스 애널리스트는 “공급 상황이 매우 타이트하고 최종 소비자 재고가 비정상적으로 낮다”고 평가했다.
경유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경유는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운송, 난방, 산업 공정에 사용된다. 경유 가격이 뛰면 난방 연료부터 최종 상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용을 밀어올린다.
우드맥킨지의 마크 윌리엄스 리서치 담당 이사는 “경유 가격은 제조, 운송, 난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격이 뛰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상품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너지 부족이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물가까지 밀어 올리면서 세계 경기침체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평가다.